스무 살 판소리 소녀 차혜지(송악읍 반촌리/부 차용삼·모 이순돌)

한류바람이 뜨겁다.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한류열풍이 이내 사그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아직까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K-POP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한류에 한국이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선뜻 답하기 어려울 듯하다. 전자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에서 한국어 가사만 없앤다면 그 국적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서양의 음악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다움’이 서구식 대중음악에게 자리를 빼앗긴 요즘, 가장 한국스럽게 전통을 잇는 당진출신의 젊은이가 있다. 초등학교 때 풍물을 시작하며 국악에 빠져든 그는 이제 갓 스무 살 문턱을 넘은 앳된 아가씨다.

오는 3월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음악극전공(판소리) 입학을 앞두고 있는 차혜지(부 차용삼·모 이순돌) 양은 국악을 좋아했던 아버지 덕에 기지초등학교 풍물반 활동으로 국악과 인연을 맺었다. 풍물반 활동 당시 장구를 주로 쳤는데 그때 사물놀이의 흥겨움에 빠져버렸단다.

“아버지의 권유로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풍물반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길(국악)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쉽지 않은 길… 하지만 “행복해”

혜지 양은 서울에 있는 국립전통예술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중학교에서는 타악을 전공하면서 판소리를 같이 했다. 혜지 양에게는 그 시간이 가장 혹독하고 어려운 시기였다. 그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판소리를 시작했다.

하루에 7~8시간씩 레슨을 받으며 제 소리를 찾기 위해 매진했다. 방학 때면 산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했다. 목소리 때문에 병원을 수시로 들락 거렸고,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의 순간을 맞닥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은 수술 없이도 목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흔들리지 않으며 피어나는 청춘이 없듯 혜지 양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대회에서 떨어지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라고 느껴질 만큼 열등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국악이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걸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왜 힘든 길을 가느냐”고 했지만 혜지 양은 국악이 제일 좋았다. 국악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어머니 이순돌 씨는 “사실 국악을 하지 않길 바랐다”면서 “어린 나이부터 가족과 계속 떨어져 지내는 게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말로는 국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엄마였지만 대회가 있을 때나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혜지 양을 도왔다.

“매일매일 혹독했던 연습보다 엄마 품을 떠나 지내는 게 더 힘들었죠.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늘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제가 지금까지 잘 견딜 수 있던 것 같아요.”

인간문화재·강단 서는 게 꿈

한국문화가 세계에 알려지고 있긴 하지만 외려 전통문화는 등한시 되고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는 자부심도 크지만 현 상황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혜지 양은 “민요와 판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며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음악도 모르면서 문화가 너무 서구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꾸 접하다보면 국악이 그저 어렵고 고리타분하지만은 않다”면서 “K-POP도 좋지만 우리 전통음악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오히려 요즘엔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전통문화가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한편 안타깝다. 그래도 비교적 서울에서는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이지만 지역은 불모지와 다름 없는 형편이다.

혜지 양과 가족들은 지역에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어 지난 2011년 당진에서 완창 발표회를 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하고 홍보한 끝에 사비를 탈탈 털어 공연을 열었지만 지역에서 반응이 크지는 않았다.

어머니 이순돌 씨는 “당진에서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면서 “국악의 저변이 더 확대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혜지 양은 어려운 시기를 거쳐 왔지만 여전히 꿈 많은 청춘이다.

“대학에서 더 전문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해서 앞으로 인간문화재도 되고,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차혜지 양은

- 송악읍 반촌리 출신

- 기지초 66회 졸업

- 서울전통예술중·고등학교 졸업

- 2010년 제18회 전국 국악 경연대회

판소리부문 장원

- 2013년 제13회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전

판소리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