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생 시절,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같은 반 남자아이들의 열에 여덟은 경찰관 또는 소방관이라고 답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두 직업은 ‘정의’와 ‘남자다움’의 대명사였던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요즘 같은 시대에 직업선택에 있어 부와 명예가 더 중요한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아주 간단명료하게 장래희망으로 답하곤 했다.
“소방관을 꿈꾸던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점 장래희망으로 소방관을 꼽는 학생들이 줄어요. 어린 아이들이 희생·봉사 하는 모습을 멋지게 생각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위험을 기피하고 안전한 길을 택하게 되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 조금 안타까워요.”
당진소방서 한흥수 구조구급팀장은 어린 학생들에겐 ‘슈퍼맨’인 소방관이다. 1993년도에 근무를 시작해 어느새 꽉 채운 20년차 소방관이 됐다. 사기소동 출신인 그는 서산과 보령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소방관 생활의 절반을 고향 당진에서 하고 있다.
원래는 교사가 꿈이었는데 교대를 가지 못하고 우연히 선택하게 된 것이 소방안전관리학과였다. 교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택한 길이었다.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 왔다.
아직도 생생한 처참한 사고 현장
지금은 구조구급팀에서 구조대 교육과 업무지도·감독, 장비 등 행정적 지원을 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지만 구조대에서 근무할 때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늘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곤 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건 지난 2006년 10월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연쇄추돌 사고였다. 당시 짙은 안개가 갑자기 서해대교 일대를 덮으면서 앞서 서행하던 봉고차를 발견하지 못한 대형트럭이 이를 들이 받고, 이후 20여 대의 차량이 연속으로 추돌했다. 한흥수 팀장에 따르면 당시 사고현장은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사고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두개골만 남아있고 다 타버린 차량 내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현장은 마치 화장터를 방불케 했다”고 회상했다.
이밖에도 익사자를 건져 내기 위해 캄캄한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칠 때면 공포가 엄습해 한동안 폐소공포증(폐쇄된 공간에 대한 공포를 갖는 강박신경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잠잘 때마다 처참한 사고 현장이 떠오르는 일은 다반사였다. 소방관도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멋진 소방관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자기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에요.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대형화재나 위급상황을 소방관들은 매일 겪어야 하죠. 업무가 힘든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늘 마주해야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요.”
사고 현장에서 울부짖는 이들의 모습은 늘상 겪는 일임에도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특히 뉴스에서 소방관이 순직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남일 같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
자랑스런 소방관 아버지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들 상윤이(송악고1)와 딸 지은이(원당중2)가 있어 한 팀장은 힘이 난다. 자식 이야기에 미소부터 머금는 걸 보니 그도 영락없는 우리네 아버지다.
한 팀장은 “아이들이 소방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힘든 일을 하더라도) 뿌듯하다”며 “아이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갖길 바라는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똑같지만 아이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게끔 하기 위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 때 교사를 꿈꿨던 만큼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는 몇 년 전부터 인형극을 통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이집 원아들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소방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꾸며내고, 목소리를 바꿔가며 혼자서 6개의 역할까지 모두 해낸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무려 40곳에서 공연했다. 뿐만 아니라 당진소방서 내 기타동아리에도 참여하면서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고된 일상을 잠시나마 덜어낸다.
“다치지 마라. 안전이 최고다”
소방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묻자 그는 “다치지 마라. 안전이 최고다”라고 짧게 답했다. 소방관에게 순직은 영예로운 일로 여겨질 수 있으나 가족들에겐 견딜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 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소방관이 되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기엔 쉽지 않은 직업이에요. 어떤 일이든 사명감을 갖고 전문가가 돼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