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가 손님을 대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를 짐작케 한다. 가슴팍에 쓰인 ‘모범’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올해 나이 일흔 하나. 어르신 대접 받는 지긋한 나이임에도 외려 “노인 손님은 더 극진히 모신다”는 택시운전사 이은석(읍내동·71) 씨다.

안전운전이 가장 큰 훈장

“운전대를 잡은 지 벌써 34년이 흘렀지요. 오랫동안 화물차 운전을 하다가 6년 전 택시를 타게 됐어요.”

운전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베테랑이다. 운전을 잘 한다는 건 단지 차를 오래 몰았다거나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잘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은석 씨는 무려 24년 간 무사고 운전이라는 자랑스러운 경력으로 교통부장관상부터 도지사, 군수 표창 등 여러 개의 상을 수상했다. ‘안전’은 그에게 가장 큰 훈장이다.

오랫동안 화물차 운전을 하며 장시간 물류 운송을 해왔던 그는 주로 서울·인천 수도권과 대구·광주 등을 오갔다.

이은석 씨는 “차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택시운전이 더 긴 것 같다”며 “하지만 화물운송보다는 덜 힘들다”고 말했다. 화물운송을 할 때는 화물 상하차까지 운전사가 직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화물차에서 택시운전으로 옮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택시운송을 위해 꼬박 5년 동안 문을 두드렸다. 당시 시승격 준비를 하면서 매년 10여 대씩 개인택시를 증차했는데, 법인택시 운전자가 1순위였고 버스, 용달 등에 이어 화물차 운전자는 가장 마지막 순위였단다. 아무래도 승객들을 모신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화물차 운전자는 거칠다는 편견도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화물차 운전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있죠. 그래도 저처럼 무사고 모범운전자도 많아요. 덕분에 화물차에서 택시로 갈아 탄 당진지역 1호 운전자가 됐어요.”

부창부수, 아내와 함께 봉사

화물차 운전을 했을 때부터 그는 모범운전자회 당진시지회(지회장 박용길)에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렇게 운전과 봉사를 병행한지 어느덧 13년이 됐다. 늘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화물차 운전을 하면서는 실천이 쉽지 않았다. 장거리를 오가야 했고, 물류 운송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야 하다 보니 시간에 쫒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틈틈이 봉사에 참여하다,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부터 조금 여유롭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당진시의 굵직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통정리 봉사를 하거나,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해 무료 택시운행을 하는 것은 물론 시설에서 일손돕기, 물품전달, 식사대접 등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면 수험생을 대상으로 시험장까지 무료승차를 실시하고, 시험장 앞에서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은석 씨는 “봉사는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떠나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에는 아내의 역할도 크다. 그의 아내는 대한적십자사 당진지구협의회에서 40년 가까이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당진봉사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던 조언례 씨다. 그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 뜻이 맞거나 행동이 일치하는 부부)다.

“아내가 이웃들에게 나눠 줄 물품을 차로 운반해야 할 때 제가 돕기도 하면서 함께 봉사해요. 보람도 크고 좋은 점이 많아요. 자녀들도 뿌듯해 하고요.”

“노인들에겐 더 친절하게”

타인을 돕고 배려하는 따뜻한 그의 마음이 손님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나이든 손님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차를 탈 때면 짐을 싣는 것은 물론 집 앞까지 짐을 옮겨다 주기도 한다. 이렇게 안전과 친절로 무장했어도, 요즘엔 택시를 타는 손님이 적어 택시기사들 모두 힘들다고 걱정했다.

신터미널 근처에서 한 시간 씩 대기하는 날도 부지기수고 연료비는 갈수록 오른다. 택시를 타는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손님을 찾아 순회하면 기름값도 나오지 않을 정도여서 기사들은 하루하루 힘겹다. 없는 손님을 마냥 기다리며 하루 10~13시간씩 택시에서 생활하면 힘들기도 하지만 그는 “법인택시 기사들은 사납금을 내야 해서 더 어려울 것”이라며 외려 다른 이를 걱정했다.

“손님들에게 더 자상하고 친절한 택시기사가 되고 싶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아내와 함께 봉사하면서 살겁니다.”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