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이요? 재미있어서 치는 거지요. 건강을 생각해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재미가 우선입니다.”

당진실용음악학원(원장 김석천)에서 드럼을 6개월째 배우고 있는 이은국(55) 씨는 지난해 3월 의사로부터 뇌졸중(뇌의 혈액순환장애에 의해 일어나는 급격한 의식장애와 운동마비를 수반하는 증후군)을 선고받았다. 젊은 나이에 찾아온 뇌졸중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현대건설 부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요양을 위해 잘 다니던 직장도 휴직해야만 했고, 이후로 탄탄했던 생활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신발을 혼자 신고 벗지도 못할 정도에 이동을 하는데도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는 더 오래 걸렸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왼쪽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마비가 찾아왔기 때문에 움직임은 매우 부자연스러웠고 발음 역시 정확하지 못해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재활치료를 받으며 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른 재활훈련을 받던 뇌졸중 환자들 역시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재활치료사가 재활치료의 한 부분으로 드럼을 추천했다. 반신반의 했던 이 씨였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음악학원을 수소문한 끝에 지난해 5월 읍내동에 위치한 당진실용음악학원을 찾았다.

당진실용음악학원 김석천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사람이 드럼을 칠 수 있을까 우려됐다.”며 “의지가 대단해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드럼연주로 즐거움 느껴

밴드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악기들 중 타악기인 드럼은 곡의 리듬을 담당한다. 리듬에는 템포(빠르기)가 있고 리듬에서 음악의 느낌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만큼 드럼은 음악의 장르를 결정하고 분위기를 살려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손과 발을 따로 움직여 연주하기 때문에 뇌신경과 그에 맞는 움직임이 뒤따라줘야 한다. 비장애인조차 악보를 보고 자연스럽게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실력을 쌓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뇌졸중 환자인 이 씨에게 드럼은 어려운 도전이었다. 다행히 고등학교 재학 당시 활동했던 밴드부 경력이 도움이 돼 악보를 보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드럼은 생소했다. 왼손가락 하나하나가 그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질 않으니 그에겐 스틱을 잡는 것부터 큰 도전이었고 박자에 맞춰 드럼을 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 씨는 “악보를 보며 드럼을 연주하는데 전혀 몸이 따라 주질 못했다”며 “기본적인 연주기법부터 차근차근 배우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든 ‘즐거움’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지치고 어렵기 마련이다.

불편한 몸 상태에서 물리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드럼은 비장애인보다 습득 속도가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에게 드럼은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자신을 포기하고 살아야 했던 그에게 드럼은 인생의 또 따른 의미로 다가왔다. 잘 되지 않는 연주였지만 ‘즐겁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긍정적인 생각의 결과 였을까, 조금씩 연주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김 원장은 “가장 기본적인 교육을 더욱 쉽게 풀어 교육하던 단계였지만 성장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가르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며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 결국 비장애인들이 연주하는 과정까지 교육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건강을 찾아준 시원한 드럼소리

이 씨가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지 4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운 연주가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건강상태도 크게 호전된 상황이었다. 힘없이 드럼 스틱을 잡던 왼손에도 힘이 들어가고 드럼소리 역시 크고 정확해졌다.

뇌신경이 왼쪽 손과 발의 근육에 신호를 보내는 게 늦고 부정확 할 수밖에 없어 박자도 맞지 않아 불규칙했던 소리가 리듬을 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봇물이 터지는 느낌이랄까요. 얼마나 가슴 벅찬 느낌이었는지 잊을 수 없어요. 뜻대로 드럼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했다는게…”

이 씨는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보다 드럼소리가 자연스러워졌다는게 더 기뻤다. 이제 드럼은 그에게 물리치료의 수단이 아닌 인생의 즐거움이 됐다.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지 약 10개월이 지나 드럼 실력도 몸 상태도 매우 좋아졌다. 최근에는 휴직했던 직장도 다시 다니기 시작할 정도다.

“시간이 날때면 드럼을 연주하러 학원에 오죠. 몸이 건강해져 드럼을 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도 좋아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은 듯해, 요즘 매우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