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서 북한구원, 통일한국을 위해 교회가 아닌 광장에서 기도를 시작한지 벌써 100회가 넘었고, 2주년이 돼간다. 많은 선교전문가들은 북한을 땅 끝이라고 본다. 북한은 세계에서 선교사가 가장 적은 나라이다.
오픈도어 선교회에서 발표하는 기독교 박해 지수 순위에서 북한은 2013년에도 1위를 해 13년 동안 연속 1위를 하고 있다. 북한처럼 참혹하게 지하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언제든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울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박해했지만, 예수님을 박해한 적은 없었다. 예수님을 박해한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로마 군인들이었다. 그러나 사울이 성도들을 핍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을 자신을 박해하는 것으로 여기신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에 대한 핍박은 곧 예수님에 대한 핍박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북한 땅에서 핍박과 고통을 받고 계신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극악한 박해를 북한 땅에서 주님이 받고 계신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수감돼 고통 받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생체 실험을 당하며, 생화학 무기의 실험 대상이 돼 죽어 가는 북한 성도들의 극심한 고난은 곧 예수님께서 친히 당하시는 고통인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 북한 땅에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으시도록 북한 동포들에게 하루 속히 자유를 가져다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북한 성도들의 고통스런 현실에 대해 외면한다면, 우리는 입으로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행함과 진실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45절에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훗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이렇게 판단하실지 모른다. “너는 내가 먹을 것이 없어 흙을 입에 넣고 쓰러져 죽을 때 내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고,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고문과 고통 속에 죽어갈 때 돌보지 아니하였고, 굶어 죽지 않으려고 탈북하여 중국, 몽골 그리고 동남아 여러나라들을 헐벗고 굶주진 채 공포 속에 쫓겨다닐 때도 나를 외면하고 구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결코 그런 적이 없다고 변명한다면 주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어가는 너의 동포 북한 형제 자매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제라도 내 동포, 내 형제 자매를 향한, 아니 바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지옥 같은 곳에서 살다가 복음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주님의 피맺힌 절규에 이제는 우리가 귀기울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