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소나무 숲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붉은 황토길을 따라 산과 고개를 몇 개나 넘었다. 내일 모레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숨이 가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한 발자국만 떼도 차오르는 숨 때문에 어려웠을 텐데, 한달음에 달려 갈 수 있을 것 처럼 몸이 가벼웠다. 그립고 또 그리운 고향 가는 길. 어젯밤도 꿈을 꾸었다.
“정월에 고향을 떠났지. 금방 다녀오겠다고 친정 식구들에게 인사하고 나왔는데 그 이후로 간 적이 없어. 갈 수가 없었지. 집 앞마당에서 가족들이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그게 마지막일 줄 누가 알았겠어.”
여전히 생생한 이름들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 탄부리. 그곳에 두고 온 박옥례(언니), 이재실(형부), 그리고 이춘자(조카). 60여 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생생한 이름이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흐려져도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이름.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언니와 형부, 조카들과 살았던 박옥순(정미면 덕마리·88) 할머니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진 출신인 남편을 따라 시댁에 인사드리러 다녀 오겠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4후퇴 때 철교를 걸어서 건넜지. 정신없이 사람들이 도망쳤어. 전차 꼭대기에 매달려 가다 떨어져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그렇게 걸어서 2월10일 날 당진에 도착했어.”
기억력이 옛날 같지 않다는 할머니는 고향 지명과 가족의 이름, 그날의 기억을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방 돌아올 줄 알고 옷가지만 챙겨 나온 할머니는 고향과 관련된 것은 갖고 있는 게 없었다. 풍경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고향은 아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때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나곤 하는데 이따금씩 그는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그리움을 달랬다.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가는 소리에 고무공장 큰 애기 단봇짐만 싼다네(신고산 타령)”
북녘 바라보면 쏟아낸 눈물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요즘 할머니는 마음 속에 ‘고향의 봄’을 그리고 있는 듯 했다. 바람이 불면 고향 땅에도 ‘바람이 불까’ 생각하고, 꽃이 피면 ‘고향에도 꽃이 폈겠지’ 생각한다. 이곳에 찾아온 봄은 그곳에도 왔을 것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정말 좋겠어. 단 한 번이라도 고향 땅을 밟아 보고 싶어. 지금은 늙어서 숨이 가쁘고 기운도 없지만 고향을 갈 수만 있다면, 가족들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힘이 날 테지.”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덧 60여 년. 그동안 온갖 기관들을 찾아가고,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가족을 찾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가족을 찾지 못했다. 전쟁통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때 살았다 하더라도 언니는 이미 아흔이 넘었을 나이기 때문에 사망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희망을 놓을 수 없다. 체념할 수 없다.
“천국에서나 언니를 만나려나”
20년 전엔 지인을 통해 민간인 통제 구역까지 들어가 고향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울고 왔다. 북녘 땅에서 소를 끌며 밭을 가는 농부에게 소리를 지르면 들릴 듯 아주 가까웠다. 그 누구에게도 잘 얘기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 두기만 했던 고향이 눈앞에 있었지만 가지를 못했다.
딸 송정애 씨는 “엄마는 고향 얘길 잘 안하셨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엄마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며 “생전에 금강산이라도 모시고 가고 싶었는데 (남북 관계로 인해) 갑자기 길이 막혀 아쉽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딸을 바라보던 박옥순 할머니는 “고향과 가까운 금강산은 어렸을 때 워낙 많이 가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가고 싶었을 그는 맘에도 없는 얘길하며 외려 딸을 위로했다.
“젊은 기자 양반이 부럽네. 꿈처럼 힘이 솟았으면 좋겠지만 이제는 천국 갈 날만 기다리지. 천국에서는 언니도 만나고, 펄펄 날아다니며 고향 땅을 다닐 수 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