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푸르게 덮였다. 모든 곳에 초록의 식물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얼마 전 모든 논 두렁에는 이앙기들이 모를 심느라 열심인 것 같더니만 지금은 푸른 빛깔의 모들이 아기 모를 벗어나면서 제법 생기를 나타내고 있다. 생명력을 드러내는 기운이 산에도,  들판에도 저 건너 호숫가에도 푸른빛의 생명력이 가득하다.

이 생명의 기운을 단 5분만 호흡하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단 1분도 숨을 쉬지 못한다면 갑갑하고 답답해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필요하다면서 공기가 더럽혀진다는 판단에 앞서 폐비닐의 소각을 비롯한 별의 별 공익적 책임감보다 개인의 당위성이 앞선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는 얼마나 부끄러운 것일까?

지금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으로 인해 바다의 그 유용한 생물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은 얼마나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가?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의 많은 수의 원자력 발전소가 서해 쪽에 건설돼 있다. 물론 발전소 관리하는 분들의 전문성으로 잘 운영은 하겠지만 염려를 떨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또한 도시는 말 할 것 없고 지방의 수많은 고속도로를 비롯해 지방도로에서 끊임없이 내뿜는 매연은 맑은 공기를 잠식시키고 있다. 물량적인 공해를 지적하는 처사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사고력은 얼마나 공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을까?

저 산하에 생명력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가득 채워지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발 맞춰 농사를 짓고 공장에서 더 유용한 생산물을 가공하느라 노력하고 있다. 앞날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고, 공무원은 공무를 집행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생명력이 계속해서 흐르기 위해 우리는 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더 풍성하게 채워지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뜻이 하나로 모아지는 지혜를 찾는 일에 계층 차별이 별로 필요치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판단일까?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희망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일까. 함께하고 나누자는 권면이 부담 되겠지만 사람이기에 해 볼만 한 문제는 아닐까. 농토를 지나면서 보리 내음과  푸른모 들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듯하고. 소나무 가지들이 흔들리면서 솔잎 향기가 풍겨 오기도 한다. 비닐하우스에서는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꽈리고추를 따는 농부들의 삶의 열정이 바로 생명력의 힘찬 모습이 아닐까?

저 태양에서 장렬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 붉게 노을 지며 하루를 마감하며 총천연색으로 휴식을 예고하는 다정한 신호들, 별들이 총총 떠서 내리쏟는 아름다운 하늘의 색채들, 두런두런 저녁 밥상을 놓고 둘러 앉아 하루의 삶을 이야기 하는 식구들의 이야기꽃, 이러한 모습 속에서 삶의 향기가 되어 나의 온 몸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