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직거래는 장사가 아니에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본인이 하는 일은 장사가 아니라고 말을 하니, 문득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라는 뜻을 알기 어려운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신평면 금천리에서 ‘규식이네 농산물’을 운영하는 박규식(53) 씨는 인터넷 홈페이지( www.qusik.co.kr )를 통해 농민으로부터 지역의 농산물을 사들여 도시의 소비자에게 파는 직거래 판매를 하고 있다. 농민들에게는 비싼 값에 농산물을 사들이고, 소비자에게는 60~70% 가량 싼 값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질 좋은 농산물과 남다른 서비스로 입소문을 타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았다.
전국으로 배송되는 농산물 택배만해도 하루 평균 150상자 이상이다. ‘규식이네 농산물’ 홈페이지와 인터넷 카페에 사람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 “밥맛이 일품입니다”, “콩이 밥처럼 달아요”, “두 번째 구매합니다”, “호박고구마 정말 맛있네요” 등 소비자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적혀 있어 ‘규식이네’에 대한 신뢰와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가스공사 그만 두고 농촌으로
“유럽의 경우 직거래 비율이 90% 이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12~15% 사이라고 해요. 직거래 비중이 상당히 떨어지는 거죠. 기본 7~8개의 유통단계를 거쳐야 하니 농민들은 농민대로 손해고, 소비자들은 소비자대로 손해를 보고 있어요.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 싶어서 직거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한국가스공사에서 근무하던 박규식 씨가 3년 전 젊은 나이에 당진에 내려와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두고, 기존 유통업자들이 다져 놓은 공고한 유통구조를 깨고자 하는 건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고향인 안면도에서 부모님이 땡볕에서 손을 불태워 가며 마늘을 캐도 사가는 사람이 없고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 현실에 절망을 느낀 날을 기억했다. 그는 부모님 세대에서 하지 못한 한국의 유통구조를 바꾸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장사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더 비싸게 사들이고 싼 값에 파는 거죠. ‘나로 인해 한국의 농업·농촌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곳곳에서 또 다른 규식이네 농산물이 계속해서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농민에게 ‘마케팅’ 가르쳐야
박규식 씨는 이 일을 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정해 반드시 지키고 있다. 첫 번째는 매입한 농산물이 아무리 많아도 75세 이상 노인들이 가져오는 농산물은 모두 사들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1kg당 1000원 이상을 더 비싸게 매입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아직까지 큰 무리 없이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농산물 생산원가를 계산하고 공개해 적당한 가격에 매입하고 또 소비자에게 판매하고자 한다. 그는 농민들이 지은 농산물을 올바르게 판매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박 씨는 “농민들이 애써 키운 농산물의 가격을 ‘후려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농민들은 생산원가를 계산하는 법조차 모른다”며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곳은 있어도, 생산한 농산물을 잘 판매하도록 마케팅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정이 묻어나는 인터넷 거래
규식이네 농산물의 특별한 점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들과 거래를 하지만 사람 사는 따스한 정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박규식씨는 햅쌀을 맛볼 수 없는 전국 곳곳의 어려운 이웃들을 추천 받아 추석을 앞두고 편지와 함께 햅쌀을 보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주문할 때면 시골의 정을 느끼게 하고 싶어 늘 넉넉히, 덤도 챙겨 담는다. 이렇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들과 정을 나누고, 가끔씩 편지나 연락이 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고.
이러한 그의 선행은 다시 그에게 되돌아온다. 박 씨의 정을 느낀 도시민들은 규식이네를 홍보하는 서포터즈가 돼 주변 사람들에게 규식이네를 알리는 역할을 한단다.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터를 닦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죠. 하지만 직거래는 장사가 아니라 농업·농촌을 살리는 일이고 이는 곧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찹니다. 정부와 관료, 기득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시발점이 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