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어머니를 무척이나 의지하고 좋아했다. 이미 고인이 된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의 따뜻한 사랑은 내 가슴을 달구고 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을 만들고 고치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더니, 청소년이 되어서는 엔지니어가 되는 포부를 가졌었다. 그래서 공대도 가고 취직도 하려고 열심을 내 던 중에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은 꿈에 부풀어 있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죽음으로 ‘죽음’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던 분, 그분의 죽음은 ‘죽음’이란 사실을 지식적으로 아는 수준을 넘어서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한 현실로 느끼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식적으로만 알았던 죽음을 감정적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다. 지적 앎을 넘어서 체험적 앎이라고나 할까? 철학의 시조 소크라테스의 말 가운데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담배를 끊는다”고 하면서 “그러한 사실을 아는데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은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 생각의 전환은 나로 하여금 그때까지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당시 어머니를 잃은 나의 슬픔은 그 누구의 말로도 위로되지 않았다. 그래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교회 목사님, 전도사님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위로를 해주실 때 이상하게도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어린 내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번 왔다 죽은 인생인데 저 목사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는 삶을 살았으면….” 그렇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목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목사가 되려고 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였다. 잘하는 건지 아닌지 갈등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남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강렬한 목적은 나로 하여금 모든 환경을 넘어서게 했다.

천신만고 끝에 신학대학에 합격하였고 곧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힘든 곳만 골라 다니던 군대 생활도 나에게는 희망으로 여겨졌다. 그 이유는 생활은 고되지만 좋은 목사로 쓰시기 위해 나를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믿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을까?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동네 주민들은 연판장을 돌리며 교회의 존립을 반대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교회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에서 점점 자리를 굳혀만 갔다. 결국 예배당과 목사관을 신축하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목회자들과 지역 주민들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찬사를 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목회활동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의 삶을 살고 싶다던 꿈 많은 소년의 소원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교회 개척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은 내 목회 인생의 지주(支柱)가 되었고, 오늘도 주님이 주신 위로의 말씀을 들고 자리를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