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지만 정부의 쌀 전면개방을 위한 관세화 결정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농민들은 쌀 관세화가 식량주권을 위협한다며 또 다른 외국의 침략행위라고 분노한다. 우루과이 협상으로 미국 등 강대국에서 14종의 농축산물 수입 개방으로 우리 농업을 파탄 낸 것은 120년 전 일제가 총칼로 우리 쌀을 수탈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농민들은 친재벌 정권과 관료들의 쌀 수입개방에 맞서 20년 동안 외로운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것은 곧 120년 전 척양척왜·보국안민·제폭구민의 갑오농민군의 뜻이 100여 년 뒤 ‘자주·민주·통일의 농민 세상’을 만들겠다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의 정신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농의 외국 농축산물 수입반대 및 식량안보 전쟁은 또 다른 갑오농민전쟁인 셈이다.

그 시대와 지금의 상황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지금 농민들이 친재벌 정권과 강대국의 탄압과 수탈에 저항하고 있는 상황은 똑같다. 정부가 수출재벌을 위해 앞장서며 강대국 눈치만 살피는 세상이 된 것이다. 특히 정부는 쌀만큼은 지키겠다던 20년 전의 약속은 물론 “농업을 시장 기능에 맡기지 않겠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 결과 수출 재벌들의 이익은 급증해 현금을 사내 유보금이라며 수천억 원씩 금고에 쌓고 세금을 훔칠 때, 농민들은 등외국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와 사회가 수출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잘산다며 불가피하게 농축산물을 개방한다고 선전하며 농민들의 투쟁을 탄압한 결과다.

그런데도 대부분 농민들은 선거 때만 되면 친재벌 개방농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표를 주고 있다. 한마디로 왜 농민들이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는지, 왜 젊은이들이 농업·농촌을 기피하고 있는지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전농 회원들은 30년 전부터 민주화 운동, 수세폐지, 의료보험 개혁, 영농자금 금리인하, 농협개혁 등 이루다 열거할 수 없는 투쟁들을 이어 왔다.

그런 농민회원들이 지금 60∼70대 고령 농민으로서 청춘을 다 바친 투쟁의 질곡을 걸어온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쌀마저 전면 개방한다며 늙은 농민들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가 더 이상 늙은 농민들의 투쟁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농민회원들의 심정이 120년 전 갑오년의 농민들 심정과 다를 게 무엇인가? 농민회원들의 쌀 관세화 수입개방에 대한 투쟁은 120년 전 합덕 소들 들판의 농민들이 면천 승전목 전투에서 왜놈들과 싸운 갑오농민전쟁과 정신을 같이하고 있다고 본다. 민초들의 생존투쟁과 식량전쟁에 이르기까지 총성 없는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도 당진시도 시민들도 식량주권을 강대국에 넘기는 것을 방관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문제는 제 나라 농민들보다 강대국 눈치를 보며 재벌이익을 위해 식량주권을 통째로 내놓으려는 정부와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전국 1∼2위이면서도 쌀 개방에 침묵하고 있는 당진시에 있다. 해마다 재배면적이 줄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22.6%밖에 안 되는 상황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굳이 식량안보를 꺼내지 않더라도 기후환경의 불안으로 선진국들은 앞 다퉈 자국의 식량자급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밝혔듯 “농업은 시장 기능에 맡기지 않고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다면 쌀 전면개방에 대해 농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제발 정부의 지원 혜택을 본 전업후계농민들이 나서야한다. 추수의 들녘에서 120년 전 농민들이 주창했던 척양척왜 보국안민 제폭구민과 앞으로 닥쳐올 식량위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