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10명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안에 합의했다. 눈에 띄는 내용은 ‘특별위원회구성원의 여·야 몫 4명 중 여당 추천 2명은 유족과 야당에 사전 동의를 받는다’는 것인데 나머지 안들은 합의도출이 쉽지 않음은 물론 이번 합의안에 유족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설령 특별법이 만들어진들 어떤 변화와 이익이 있겠냐는 비관론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여·야 간의 이전투구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정치력 부재에 실망하는 것은 물론이고, 야당이 법제정의 목적에 벗어난 ‘전원 의사자 지정’ 등 22가지의 상식 밖의 내용을 주장해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130석 야당으로써 큰 불신과 실망을 안겨 줬다. 때문에 국민들은 “158석의 거대 여당은 무엇이 두려워 합리적인 법안을 담아내지 못하느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를 통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이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304명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고자 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들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극심한 불신에 기인해 특별법 제정을 위해 가족과 국민이 믿을 수 있는 특별위원회 구성과 충분한 활동기간 보장, 독립적 수사권 및 기소권 보장, 참사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해 왔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하루 4만 명이 찾는 서초동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부상하는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발생했다. 거대한 백화점이 완전히 붕괴하기까지는 채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삼풍백화점은 원래 주거용으로 허가 받았지만, 이후 구청장과 주택과장 등 10여 명의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상업용 근린상가로 용도를 변경한 후 4층 건물을 5층으로 구조를 변경했다.

또한 옥상에 87t 무게의 에어컨 냉각탑을 얹어 하중이 허용치의 4배가 넘게 했으며 시공사가 붕괴의 위험성을 경고하자 이준 삼풍건설산업 회장은 시공사를 경질하고 자사계열의 건설사를 통해 부실공사를 진행했다. 게다가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에 들어가는 철근을 절반만 넣고 굵기도 25%를 줄이는가 하면 기둥도 몇 개 없앤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5개월 전부터 옥상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는 등 붕괴조짐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끝없는 탐욕으로 백화점은 계속 운영됐고, 붕괴 당시에는 임원진만 미리 빠져나왔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세월호 참사와 너무도 닮아 있다.

이준 회장은 서초경찰서에 수사를 받으러 나와서도 전혀 속죄나 반성의 기색 없이 기자들의 질문에 언성을 높이며 “여보쇼! 무너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라고 말하는가 하면 사고 원인을 묻자 “그것을 알고 싶거든 사장한테 물어보쇼”라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그의 당당함 뒤에는 그가 통역장교 출신이고,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중앙정보부의 창립멤버라는 뒷배경이 있었다.

이런 대형참사가 발생했음에도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은 수개월의 징역, 집행유예, 100∼300만 원의 벌금을 물었을 뿐이었고, 이준 회장과 그의 차남인 백화점 사장은 7년형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이 회장은 출소 후 6개월만에 황금만능주의의 추함의 극치를 뒤로한 채 건강악화로 결국 빈손으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삼풍백화점과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행정 시스템의 정상화시키고 정·관계를 망라한 먹이사슬로 얽히고 설킨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국회가 미적거리는 ‘김영란법’을 속히 가결시켜 깨끗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의 실현가능 여부는 부정부패의 척결 여하에 달려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