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에 부임해 성도들에게 물었다. “우리교회 정곡의 정자가 무슨 ‘정’ 자 입니까?” 내가 아는 정자는 고작 우물 정, 바를 정, 곧을 정, 정 정이었다. 성도들은 “우물 ‘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정곡교회는 바로 우물 정, 계곡 곡 자를 쓰는 것이었다. 1년 넘게 다녀도 우물과 계곡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 해 겨울 교회 마당공사를 하며 연못을 크게 만들었다. 물줄기도 높게 올라온다. 뭔가 아쉬워 손재주가 좋은 친구에게 모형 우물을 보내달라고 했고 근사한 우물 모형이 왔다. 수도꼭지 위에 덮어 얹혔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우물인줄 알고 궁금해 하며 고개를 내밀어 봤다. 그들은 모형 우물을 보곤, “가짜네” 하고 웃는다.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의 문터에서 마당의 수도를 틀었다. 그 자리에서는 부글부글 흙이 끓기 시작해 결국 질퍽하게 되었다. “아마 터진 것일까? 몇 일후 또 돈이 들겠구나”하며 조금씩 파내려갔다. 배관이 터져 물줄기가 나왔다. 설비를 부를까 하다 시골교회 형편으로 직접 해보기로 했다.
배관과 부동전까지 사왔다. 그러나 부동전을 설치하지 않고 수도꼭지만 연결하고 그 밑은 톱밥을 두둑히 깔고 백세면을 발랐다. 흙을 파들어 간 모양이 그럴듯하게 우물이 만들어졌다. 왠지 속이 편했다. 속이지 않는 거 같아 좋았다. 작은 우산분수를 넣으니 성도들이 큰 연못 보다 더 좋아했다. 가짜 우물 모형은 그 옆에 두었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도 좋다. 동네에 착한교회에서 23년 전 결혼식을 올린 이석주 성도가 붕어 열한 마리와 메기 한 마리를 넣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신나했다. 가짜에는 아무것도 넣을 수 없었으나 진짜에는 진짜를 넣을 수 있었다. 물고기와 물옥잠화, 물배추···. 구약성서 창세기 26장에 ‘야곱의 우물’이 나온다.
18절 말씀에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22절 말씀에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자식이 또 파니 파는 족족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 우물들의 이름은 에섹, 싯나, 르호봇···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시편 1편에도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아니함 같으니···> 이사야 58장 11절 말씀에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제 이 언덕뿐 아니라 송악읍 논베미 마다 물을 댄다. 써래질 후에 물기 질퍽한 그 곳에 어린모를 심고 그 물줄기를 머금고 논마다 푸르러 질 것이다. 진짜 이기에, 살아있기에 굳이 가짜를 진짜처럼 보일 필요 없다. 살아있음에는 생명이 깃드는 법, 우리교회 정곡교회 살아있는 교회 살아있는 목회자 살아있는 성도, 비단 이 뿐 만 이겠나. 내가 살고 있는 송악 그리고 점점 커가는 당진 살아있음에 당차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저 언덕 너머에 시원한 우물교회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