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우리 사회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합니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하는 바탕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에서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요즘 시사뉴스의 지면을 장식하는 소식의 많은 부분은 불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쟁, 살인, 테러, 자살, 실직 등 매스미디어의 특성상 자극적인 기사와 흥미 위주의 내용이 대중들에게 먹혀 들어간다는 속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이런 기사들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쳐 낼 수가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여러 교우님으로부터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인가요?”라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한 출발점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장을 통해 보여주신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답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1장 40절 이하를 읽으면, 주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하시자 그는 곧 나병 증세가 사라지면서 깨끗이 나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죄인으로 낙인 찍혀 따돌림을 받고 불행하게 살던 나병환자에게 새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이야기입니까? 저는 이 이야기를 묵상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현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측은지심이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나타낸 말입니다. 또한 맹자는 공손추편(公孫丑篇)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라고 함으로써 사람됨의 기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함으로써 나의 올바른 신앙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 소외된 이웃,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마음이 바로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이며 우리가 간직해야 할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뿐만 아니라, 손을 내밀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 사랑을 베푸는 직접적인 실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받은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 바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측은지심을 넘어서 내 손을 이웃에게 내밀어 사랑의 신앙을 실천할 수 있다면, 내가 사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하느님 나라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