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삭막한 입시환경 속에서 희생 당하는 아이들의 항변쯤으로 생각하기에는 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가져왔던 말이었습니다. 사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현실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행복은 성적순이다라는 억지로 아이들을 채근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행복의 기준은 다양합니다. 고가의 장식품으로 치장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 속 작은 집에서 된장찌개 한 그릇과 밥 한 공기로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극한의 도전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장이 나서 내팽겨진 자전거를 고치면서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나는 무엇을 통해 행복해지는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감사하십시오. 그 행복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요? 그렇다면 혹시 무지개를 찾아 다니고 있는 건 아닌가요?
“설산을 둔갑시켜 황금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배로 늘린다고 하자. 어디 한 사람의 욕심인들 채울 수 있겠는가? 사람들아, 이것을 알고 올바르게 행하라”는 말이 불교서적, 잡아함(작왕경)에 나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욕심, 헛된 생각을 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어떤 부자가 소출을 많이 얻게 되어 쌓아 둘 곳이 없게 되자 더 큰 창고를 지어 곡식과 재산을 넣어둡니다. 그리고 걱정할 것 없으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 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행복이 재산이나 명예, 권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마치 “행복은 재산이 많은 순서, 명예가 높은 순서, 권력을 가진 순서다”라면서 스스로를 얽매면서 사는 것은 아닌지요? 교회에서 권사님, 장로님이 되어야만 행복할까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다’라는 말이 꽃동네 입구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그 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주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행복의 기준은 주님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삶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병자를 고치고, 5000명을 먹일 수 있는 기적을 행하고, 물위를 걸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삶은 작은 것에서 슬픔도 느끼고, 행복도 느끼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삶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작은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내가 지금 행복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주님께서도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