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23일. 오후 4시30분

주말 오후, 바쁜 일과를 마치고 이제 막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와, 어느새…이렇게나 많이…’ 일기예보대로 눈이 많이도 내린다.

폭설과 한파가 있을 거라 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눈이 쌓이는 모양새가 마치 여름철 장맛비 같다.

사진으로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꽁꽁 얼은 베란다를 향해 다가갔을 때, 저 아래 누군가의 분주한 손놀림을 본 순간 손이 다 떨렸다.

‘꼭 담아내야 해!’

좌우 같은 넓이로 앞을 향해 전진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빗자루를 든 손, 가히 신의 경지 같았다.

‘누굴까?’라는 생각이 든 사이, 이미 어르신은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1년 전 아파트 입구 화단을 남몰래 가꾸시던 어르신이 떠올라 혹시 그 분인가 싶어 허둥지둥 달려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손을 내민 손은 이미 붉어진 채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이날은 영하 9도였다.

주인공은 경비아저씨였다. 경비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눈을 쓸어도 쓸어내도 또다시 쌓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쓸어 내는 모습! 솔직히 눈을 방치한다고 해도 그를 나무라며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 되는 것이 있는 반면 눈과 같이 사람이 막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할 도리는 다 하고 싶으셨나 보다. 얼굴이 잘 나오게 찍으려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나를 보며 오히려 추운데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신다. 입주민을 위해 눈을 치워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많은 분께 알려 드리고 싶다고 설명했더니 그제서야 손사레를 겨우 멈췄다.

저만치서 관리소 직원분이 제설기를 가져왔다. 한 손에 기름통을 붙잡고 힘에 부치게 몰고 가신다. 따라가 촬영하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옮기신다.

우리 아파트는 참 살기 좋은 동네다. 작은 것 하나를 나눠도 감사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알고, 오가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를 해줘도 기분 상할 일 없는 그런 곳이다. 어릴 적, 조그만 동네와 같이 이웃 간에 마음의 담을 헐고 내 집, 네 집 허물없이 지내 듯 살아가는, 그런 따뜻한 온정이 있는 동네다. 집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준비 하는데 아파트를 위해 고생하던 그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식사를 하셨을 시간일 텐데…’

피곤한 탓에 깜짝 잠이 들었던 나는 새벽녘에야 문득 깨어 창밖을 봤다. 24일 새벽 1시 40분이었다. 영하 12.5도. 세상이 온통 새하얗다. 밤새 내린 눈에 몇 차례 계속 제설작업을 하셨을 분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저녁시간에 미리 준비해 놓은 야참을 이 시간에라도 갖고 가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부엌에서 소리 나는 달그락거림에 깬 아이들도 엄마를 지켜준다며 함께 길을 따라 나섰다.

연거푸 감사하다며 따뜻할 때 드시라는 말끝에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을 뿐이라며 수줍은 미소 뒤로 눈을 피하시는 어르신의 눈빛이 이내 촉촉해진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깜깜한 세상을 비추는 가로등 아래로 새벽별이 소복이 내려 새하얗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