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개별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특성과 삶의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주제를 갖고도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조직과 지역사회는 갈등이 증폭된다.

그 갈등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것이 리더의 조건 중에 하나다. 갈등은 재화나 서비스 등의 희소성 때문이다. 갈등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최선의 합의점을 이끌어 내야한다. 그것을 해결해 조화롭게 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조직의 리더와 구성원들이 그 갈등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의미 있는 창조는 갈등 속에서 만들어 진다. 그것은 진리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정의는 분노에서 나온다. 그 분노에서 나오는 정의는 새로운 진보를 지향한다”고 했다. 소통의 핵심 속에는 정의가 존재한다. 정의로운 리더는 참 좋은 생각으로 만인과 소통하려 노력한다. 불편한 소통은 독재이며 맹종을 강조한다. 소통하지 않는 리더는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가 없으면 나서지 말아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리더는 정의를 위장한 독선의 보수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소통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사회학자는 말했다. 공감, 진실성, 자기개방, 존중, 따뜻함이라는 것이다.

<공감>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 라포형성이다. 인간은 각자의 개별적 특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진실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진실함의 높고 낮음을 간파하기 어렵다. 진실함은 자기 자신만의 영역이다. 세월이 가면 진실인가, 사실인가, 거짓인가가 판명된다.

<자기개방>은 진실함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십년이 가도 이십년을 함께해도 그 사람을 모른다는 것은 상호간 그 부분이 부족해서이다.

<존중>의 의미는 인격의 문제이다. 사람은 남을 잘 배려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게 한다. 인격은 남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따뜻함>은 참으로 좋다. 쌀쌀한 날씨에 차가운 변기, 찬물을 생각해보자. 따뜻함 그 것은 곧 행복이다. 사람을 살리는 가장 큰 심리적 도구는 따뜻한 한마디의 말, 생각인 것이다.

어느 노인복지시설 건물 옆에 잔디밭 정원이 있었다. 그 정원 안쪽으로 원치 않는 오솔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수의 노인들이 그 곳으로 늘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 시설장은 불편한 잔디밭 길에 말뚝에 줄을 매어 통제한 후 이렇게 써놓았다.

“여기는 길이 아닙니다. 돌아가셔요. 제발!” -관장백-

시설을 이용하는 다수의 노인과 대중들은 그 곳이 빠르고 편리하기에 그 곳으로 다닌 것이 확실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길은 노인들이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상호작용이요, 가장 민주적인 소통 방법이었다.

이제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통 없는 공약, 대중이 원하는 것을 외면하는 공약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지켜보자. 선거직 리더는 소통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참 좋은 국회의원이라고 국민은 믿어 줄 것이다.

요즈음 정치판 소통의 시대정신은 불통의 권력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가장 좋은 소통은 조직 구성원의 마음을,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리라. 소통을 위한 상호작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