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다. 산천초목이 온통 푸르름으로 물들어 바라만보아도 생기가 도는듯하니, 저절로 생동감이 넘치는 달이다. 들길을 걸어도  숲길을 걸어도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여기저기서 반긴다. 오월의 들판은 청보리 밭 물결 따라 풋풋한 풀 내음까지 싱그럽다. 오월의 풍광으로 보아도 계절의 여왕임에는 분명하다.

매년 5월 15일은 교권을 존중하고 스승을 공경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여 교원의 사기를 높이고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제정한 국가기념일로 스승의 날 행사는 1963년부터 시작되었다.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시던 전문학교 시절의 교수님께 스승을 날을 앞두고 감사의 인사 겸 안부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받으신 교수님은 매우 반가워하신다. 졸업하고 나면 학생들도 멀어지기 일쑤인데 제자가 이렇게 기억해 주니 스승으로서 사도의 길에 보람을 느낀다는 말씀도 하셨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1978년 2월에 나는 존경하는 교수님을 따라 며칠 전에 가축인공수정사 자리가 비었다는 충청남도립 유성종축장을 찾았었다. 장장실에 안내되자 교수님은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근면하여 학창시절엔 가정교사 노릇을 하며 학교에 다닌 모범 청년입니다”라며 나를 소개하셨다.

유성종축장 장장님께서는 병역 필 관계며 축산에 대한 제반사항을 면접 식으로 테스트 하신 뒤 “고향이 먼 서산인데 그 작은 박봉으로 객지에 나와 근무할 수 있겠나?”하시며 근엄하게 물으셨다. “예, 저는 봉급보다도 축산 현장에서 가축과 생활하며 사회경험을 쌓으며 인생설계를 하고 싶은 것이 본인의 솔직한 심정입니다”라고 나의 입장을 소신껏 분명하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종축장에 임하며 축산학도로서의 바른 길을 걷게 되었고, 이기동 교수님은 내 인생의 시작을 이끌어 준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다.

유성 종축장에 근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교수님의 은덕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여러 가지로 고충이 많았다. 어떤 돼지가 어떻고 돼지 이표는 어떻게 봐야하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불안스럽기까지 했었다. 물론 신입사원인 나에게 장장님을 비롯하여 계장님 이하 여러 직원들의 협조와 가르침은 너무나 많았었지만 모든 게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환경적응에 민감하지 못했던 나의 성격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교수님께 전화도 드리고, 찾아뵙기도 했는데 교수님은 나를 친자식처럼 챙겨 주시곤 했었다. 교수님은 그런 일을 전혀 귀찮게 여기시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것을 하늘의 뜻으로 여기셨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기만 했던 나를 더욱 격려하고, 지도하여 주셨다. 그 후 당진시청에서 34년이란 공직생활을 정년퇴임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은 늘 부족하기만 했던 나를 보시면 언제나 미소로 대해주셨고, 용기와 사랑으로 채워 주셨다. 하룻길을 걸어가자면 세 명의 스승을 만나게 되고, 한평생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고 하지만, 내게는 대학 때 공부를 가르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부모님처럼 보살펴 주신 이기동 교수님을 잊을 수가 없어 언제나 스승의 날이 새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