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은 아쉬움과 설렘이 공유하는 달입니다. 감사와 축복을 나누는 크리스마스 속 숨겨진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 군인들이 다시 정권을 잡은 12.12 사태,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더 알려지게 된 홍경래의 난, 쌀 수탈의 아픈 역사와 일본에 저항하며 독립을 꿈꾼 나석주 의사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함께한 달입니다. 매일 매일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12월에 담긴 이야기로 지금 어린이기자단과 출발해 볼까요?

미리 만나는 크리스마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다. 거리를 밝히는 트리와 캐럴, 산타의 선물은 종교적인 것을 떠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지게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당진동일교회 이수훈 담임목사를 만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12월 25일?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날로 알려진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의 미사를 의미하며 고대 영어 ‘Crestes maesse’에서 유래 했다고 전해진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마리아의 처녀 회임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기록돼 있지만 그 날이 언제인지 기록돼 있진 않았다. 초기 그리스도 교도는 1월 1일, 1월 6일, 3월 27일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도 했으며 교황 율리우스 1세(재위 337~357) 때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고정됐고, 본격적으로 그날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흰 수염에 불룩한 배를 가진 산타 할아버지가 실제 인물이라고?

루돌프 사슴, 커다란 선물 보따리, 빨간 옷에 “호! 호! 호!” 기분 좋은 웃음을 가진 산타 할아버지는 소아시아 지방(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 흑해·마르마라해·에게해·지중해 등에 둘러싸인 반도)에서 출생한 성 리콜라스 이름에서 유래한다. 선물을 나누어 주는 산타클로스의 풍습 또한 성 리콜라스가 평상시 어린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나누어 준 것에서 유래됐다. 지금의 모습은 1931년, 미국의 음료 회사 코카콜라가 겨울철 콜라 제품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를 막기 위해 홍보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코카콜라의 상징인 붉은색을 산타클로스에게 입히면서, 홍보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올해도 자선냄비를 끓게 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에 종소리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빨간색의 구세군 자선냄비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한 사관이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한 사람이 오클랜드 부두로 나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에 다리를 붙이고 거리에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였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게 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됐다.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마스

세상의 빛으로 탄생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한 크리스마스. 서로를 위한 축복과 감사함을 전하며 스스로 산타가 돼 희망을 나누는 의미 있는 날이 됐으면 한다.

계성초 3학년 이다은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보는 홍경래의 난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고 이민족과 접해있는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도 심해졌다. 이에 대한 부당함에 저항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의 뜻을 모아 일으킨 것이 홍경래의 난이다. 홍경래란 인물이 화제가 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12월의 역사 홍경래의 난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구르미 그린 달빛’처럼 홍경래에게 딸이 있었을까?

드라마에서 효명세자와 홍라온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나온다. 여기서 홍라온은 난을 일으켜 역적이 된 홍경래의 딸로 등장한다. 실제로 홍경래에게 딸이 있었을까? 홍경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은데, 한 자료에서 보면 홍경래는 ‘최조이’라는 아내 사이에서 아들 둘을 두었다고 나와 있다. 극 중에서 순조가 홍경래란 이름을 듣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홍경래는 10일 만에 10개 지역을 장악한다. 이는 조선시대 가장 위협적이었다고 할 만큼 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사건이다. 이런 현실은 조선의 조정에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되살아난 홍경래

홍경래는 정조성에서 관군에 의해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백성들은 홍경래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어딘가에서 다시 세상을 바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믿었다. 홍경래의 난은 비록 실패로 끝이 났지만 나라와 지도자들의 잘못이 드러났고, 배우지 못한 농민이나 가난한 백성의 힘이 얼마니 큰지를 알게 해줬다. 이후에 그 정신은 동학 농민 운동과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요즘 촛불집회가 큰 화제다. 150만 명이 넘는 집회 가지들의 평화시위에 많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역사가 점점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잘못된 것에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당초 4학년 송승주

농부가 사라진 대한민국

매일매일 밥상에 오르는 밥은 모든 반찬에 어울리는 우리의 주식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안 좋은 일이 있다가도 집에 들어가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상으로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차오르기도 한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한 우리의 주식 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의 쌀을 빼앗긴 아픈 역사

일제 식민지였던 1920년 12월은 일본에 의한 ‘쌀 수탈’ 사건인 산미증식계획이 수립된 날이다.

일본의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나라가 공업화되면서 일본의 농민들이 도시로 이동하게 되고 농업이 발전하지 못하며 결국 나라 안이 쌀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 쌀을 수탈했던 계획을 산미증식계획이라고 말한다.

산미증식계획은 두 차례 이뤄졌으며 1차는 1921년부터 1925년까지, 2차는 1926년부터 1935년까지 실시됐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토지를 조사해서 자신의 땅을 증명하지 못하는 농민들에게 강제로 땅을 빼앗고 증명서가 있으면 헐값에 팔아 일본인들에게 싸게 살 수 있게 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쌀을 수탈하였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량부족으로 만주에서 싼 잡곡을 들여와 먹어야만 했다. 농민들은 화전민이 되거나 소작농이 됐고 산으로 도망을 쳤다. 결국 우리나라의 농업을 퇴화시키는 원인이 됐고 산미증식계획은 일본의 인력과 비료 부족 등의 이유로 1940년에 중단됐다.

우리의 쌀이 위협받게 될 미래

현재 우리도 쌀 개방의 문제를 안고 있다. 쌀 개방을 하면 당장은 쌀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농민들은 100년 전 농민들처럼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 쌀 개방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농부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을 다른 나라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먹거리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우리 고장 당진에는 당진을 대표하는 해나루 쌀이 있다. 농부가 사라진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없다.

계성초 3학년 민세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