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 필자가 살면서 경험했던 시리아 사람들은 평화롭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만난 사람을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안부를 묻고, 바쁜 일상이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여유를 잃지 않는 그들이었다. 마치 20년 전 정이 넘치던 우리의 모습과 비슷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고, 우리나라가 자국민 신변보호를 위해 시리아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면서 모든 한국인은 시리아를 떠나야 했다. 처음 시리아를 떠난 사람들은 외국인들이었지만, 시리아 내전이 악화되자 여러 가지 위협을 느낀 시리아 사람들은 자국을 떠나 주변국가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이름은 ‘시리아 난민’이었다.

난민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무거운 삶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시리아에서는 집도 있고, 승용차도 있고, 직업도 있었지만 시리아 내전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집 대신 천막에 살면서 비가 올지, 바람이 불지 걱정하게 되었고, 구걸이 직업이 돼버렸다. 그리고 난민을 받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도 없이 주변 국가에 피해를 주며 떠도는 사람들’이라며 무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난민이라는 이름에는 희망이 없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초기에 난민들에게 물으면 내년에는 돌아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내전이 장기화되자 이들은 희망을 잃게 되었다. 스스로 노력을 해도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도덕적 책임감도 점차 약화되었다.

요르단에서 처음 시리아 난민들을 만났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내가 경험했던 과거의 시리아 사람과 다른 모습이었다. 여전히 차를 마시고 있지만 차를 마시던 모습에 여유와 미소는 사라졌고, 만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대신 생필품을 요청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다급함만 있었다.

그들이 난민으로 적응하는 삶은 버거워 보였다. 한숨이 끊이지 않고, 매일 다가오는 생계의 위협은 시리아에서 경험했던 죽음의 공포처럼 무겁고 힘들게 다가왔다. 이들은 시리아 내전으로 집과 삶의 터전이 파괴되었지만, 수년간 떠돌이 생활로 인해 이들의 내면이 파괴되었다.

시리아 난민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데 외부의 도움을 받기만 하던 이들은 더 많은 도움만을 요구하고, 돕지 않는 외부에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로 변해갔다.

난민을 돕는 일을 하던 중, 인터뷰를 위해 난민 집을 방문하였다. 난민을 조사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 그들의 예의를 지키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집 주변의 시리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어느 누구도 난민으로서의 필요를 요청하지 않았고, 그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지만 우리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본인은 거기서 난민이 아닌 여유가 있고 남을 배려하는 시리아 사람을 만났다. 이후 시리아 난민을 도울 때, 물질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그들을 존중하자 그들도 난민의 입장이 아니라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반갑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정기적인 방문으로 관계를 맺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함께 울 때, 그들의 닫힌 마음이 열리고 내면의 상처가 회복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더 상처 입을 상황만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회복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우리의 관심이 내전으로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기적과 같은 일일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시리아 난민들에게 기적의 시작이고, 우리에게도 기적을 경험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