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 중에서 행복한 날은 몇 날 며칠이나 될까요? 모든 사람이 언제나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실상 행복한 삶은 쉽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난한 날에도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부유한 중에도 나름대로의 슬픔과 불행이 있는 것을 보면 행복은 부유하고 가난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행복은 마음 씀씀이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며, 하루의 생활을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사는 그 날들이, 행복한 나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행복을 이루는 요인에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행복을 이루는데 때때로 낙천성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걱정을 하면서 살면 실수가 줄어지기야 하겠지만 날이면 날마다 사소한 곳까지 신경을 써서 얼굴을 찌푸리고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이는 낙천성을 태만이라고 반박할지 모릅니다. 물론 이것이 태만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하지만 항상 일그러진 얼굴로 다니느니, 차라리 낙천성을 가지고 하루하루 닥쳐오는 일들을 웃는 얼굴로 맞을 수 있는 생이 행복을 좀 더 추구하는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물 반 컵을 보고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대범한 사람. 그리고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만족할 수 있으며, 자기에게 돌아온 보답에 대하여 웃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슬프고 괴로운 일은 털어버리고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생활할 때, 깨어 있는 동안에 최선을 다할 때, 그리고 하루를 돌아보아 만족스러울 때, 그 때가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의 순간들이 아닐까요? 때문에 나는, 다음 날을 더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기 위해서는 ‘태만이 아닌 낙천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에게는 가난하지만 집이 있고, 멀리 떨어져 있으나 가족이 있으며, 하루의 반나절을 같이 웃으며 보낼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부딪치며 하루를 살아가는 용기가 있지 않은가요?

우리가 라디오에 다이얼을 돌려 잡음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꾸는 것처럼, 모든 염려와 근심을 털어버리고 ‘태만이 아닌 낙천성’을 지닌 자로서 웃음을 친구삼아 보십시오. 그러면 행복은 슬며시 들어와 우리와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찾으러 저 먼 별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발견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