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구/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전창식 / 신평면 신송리 면계
도의와 염치를 아는 선량이 아쉽다
어부지리(漁夫之利)! 삼국지를 읽어내려가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깨닫게하는 대목이나
마음의 고동을 치게 하는 대목들이 광산에서 금을 캐듯 무진장으로 쏟아져 나옴을 볼 때 실
로 놀라움을 느낀다.
조(趙)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소진은 이를 말리면서 조왕에게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했다.
“제가 여기오는 도중에 길을 건너는데 가만히보니 모래위에 조개가 나와 있었습니다. 이
를 보고 도요새가 그 살점을 쑤셔댔습니다. 조개는 요놈하고 껍데기를 닫고 도요새 입을 꽉
물고 놓지 않았습니다. 도요새가 하는 말이 ‘요놈아 2~3일만 비가 오지 않으면 넌 말라죽
고 말테다’여기 질세라 조개가 대꾸했습니다. ‘뭐 너 잘났다고 떠드느냐. 이대로 있으면
너야말로 숨막혀 죽을거다’ 이렇게 서로 으르릉대며 한치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어부가 와서 냉큼 조개와 도요새를 잡아가 버렸습니다. 지금 조나라는 연을 치려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 어부지리를 보는 건 진나라밖에 없잖겠습니까.”
한보사태로 온나라가 술렁거리면서 인사가 만사라고 하던 문민정부의 권좌주변의 인물들이
쇠고랑을 차고 구치소로 들어가는 꼴은 법위에 사람이 올라타고 나라를 다스린 탓도 그 무
게가 많이 실려있는 듯 하다.
TK(대구ㆍ경북)가 무너져내리고 PK(부산ㆍ경남)의 인치(人治)들이 주위를 쌓고 있더니
“돈을 받아먹지 않았다” “저놈이 먹었을 것이다”하며 정국을 시끄럽게 하고 국가의 기
본을 흔들거리게 하더니 나라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촌부(村夫)들의 입에서 나
오기 시작한다.
전직의 두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법원을 출입하고 있는 판국에 똑같은 짓거리로 나라가 어
수선하니 이에 득을 볼 사람은 누구들인가.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이다. 기왕에 백일하에 들
통이 날 것이라면 국가의 위기를 뚫어가기 위해서라도 지위가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
백기를 들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현명하고 나라의 위기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라고 본
다. 이런 때 나 개인을 죽이고 국가를 살리는 살신성인이라도 하면 의로운 시민으로 존경받
을 것이다.
전세계의 가톨릭 신도들은 지난 2월 12일(재의 수요일)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에 참석을 했다. 우리모두는 삶의 태도를 바꾸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처지를 이해
하고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
이것은 우리들의 책임과 의무이다. 나 혼자만을 위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국가와 이웃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쾌락을 이겨내는 단식도 하고 참된 이웃과의 형제애
를 나누기 위해 자선, 나눔을 가져야 하고 자기자신을 맑게 드러내야 됨을 인식하고 마음에
서부터 참회의 뜻을 담아 머리에 재를 얹어야 될 것이다.
전창식씨!
전창식씨는 천주교 신송리 공소회장을 맡고 있다. 공소(公所)는 천주교 신부가 상주하지 않
는 지역 소공동체를 가리키는 장소로서 신송리 공소의 천주교 신도수는 약 120여명. 천주교
신합덕교회에서 관할하는 곳이다. 또한 전창식씨는 신평면 신송2구 면계 노인정의 노인회장
도 겸직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원로이다.
전창식씨는 면계부락, 20여호가 모여 사는 마을에서 선친 때부터 물려내려온 논밭을 가꾸
면서 74년째 한 장소에서 큰아들 내외와 손자등 한지붕 3대가 사는 우리전통 가족제도를 소
박하고 우직스럽게 면면히 지켜온 분이다.
전창식씨는 20세 청년시절 일본인에 의해 일본땅 홋가이도 유바리 탄광으로 징용되어 만 4
년간 탄광의 광부로 막장생활을 했다. 강제적으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을 위해 노동을 했음
을 자책하여 광복후 조국의 번영에 일조하기 위해 46년도에 전남 광주에 있는 국방경비대
20연대에 입대하여 군인생활을 했다. 입대후 여수ㆍ순천 반란사건때 전투에 참가, 부상을 입
고 제대했다.
전창식씨는 혈기왕성하던 청년시절 집을 떠나 객지생활 7년을 끝으로 50여년간 집을 떠나
지 않고 농업에 전념하면서 슬하에 아들 7형제를 두었다. 큰아들 내외는 가업인 농업에 종
사시키고 나머지 6형제들은 각자의 적성에 따라 일터를 찾아 객지로 떠나 나라의 큰 기둥으
로 활동을 시켰다.
전창식씨는 배움도 짧고 오로지 농업에만 전념하였다. 62년도에 천주교에 입교했다.(세례명
야고버) 입교동기를 물으니 “농업이란 자연에 의해 자연에 순응했을 때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지 자연을 거슬러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런 대자연에서 문득 보이지 않는 누군가
의 힘에 의해서 등뒤로부터 내가 지탱된다든가 명령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그
런 느낌이 있을 때 마음의 평화가 오며 농사도 손쉽게 됨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바로 그 힘
이 하느님이라 직감하여 천주교에 입교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떡값, 정치자금이란 이름으로 몇천, 몇억을 받아 챙겼으면서도 얼굴도 변치않는 작금의 정
치인들, 온통 나라를 뒤엎어 놓고도 딴청피는 사람들, “법에 위배되지 않는 행동이면 무슨
행동이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법률은 사회공동체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
켜야 할 점, 두드러진 것만 골라 정한 것이다. 이러한 것까지 일일이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
것은 각자에게 도의심과 염치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세비가)
도의란 도덕상의 의리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으로서 꼭 지켜야 할 올바른 길을 의미하는 것
이며 염치란 조촐하고 깨끗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그네들이 범
하고 있는 죄목은 도의와 염치에 해당하는 법을 범했음을 알아야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