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경 / 목원대 경제학과 교수
대기업 종속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1.한보사태가 주는 교훈
한보철강 부도는 지역경제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금융기관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집계된 자료에 의하면 대전ㆍ충남에 총 9백51억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
에서도 당진의 피해가 가장 커 1백65개 업체에 5백59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되어있
다. 이런 부도의 여파는 2차, 3차 거래업체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지역경제 전체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한보사태는 지방재정에도 영향을 미쳐 당진군
의 경우 도세 징수교부금의 미교부로 일반회계 예산의 9.1%에 해당하는 1백14억원의 세입
결함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렇게 일개 공장때문에 지역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보는
일이지만 선진국에서는 자주 있어왔던 일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에 석유화학, 철강, 조선회사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런 대기업 하나에 전 지역이 매달린 지역
에서는 지역경제 전체가 덩달아 휘청거린 예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하나의 대기업에 종속해
있는 마을을 기업 죠-카 마치(企業城下町)라고 해서 한 기업이 마치 성주처럼 군림하는 것
에 비유하고 있다. 대체로 이런 마을들은 1960년대 일본경제가 급성장할 때 신산업도시라고
해서 한참 빛을 보았지만 70년대와 80년대 이후 대기업들이 급속히 빠져나감으로써 마을 전
체가 쇠퇴해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한보사태는 본의든 타의든 당진경제의 발전방향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
해 보게하는 좋은 기회이다. 일개의 대기업에 매달리는 지역경제구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
가를 전 주민이 지금처럼 뼈저리게 깨달은 때가 없기 때문이다.
2. 대기업 종속경제가 왜 문제인가?
지역개발전략에 외생적 발전전략과 내생적 발전전략이 있다. 외생적 발전전략이란 외부 기
업유치를 통하여 지역진흥을 꾀하는 발전전략이고, 내생적 발전전략이란 지역이 가진 인재
ㆍ자원등을 바탕으로 향토기업의 주도로 지역진흥을 꾀하는 방법이다. 당진지역의 공업발전
은 수도권에서 이전하는 외부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외부의존형 발전 또는 외생적 발
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외부로부터 유치되는 경우 고용과 인구의 확대를 가져오고 그것은 다시 관련산업의
발전과 지방재정의 확대를 가져와 기업의 입지 여건이 개선되고, 이에 따라 지역이 누적적
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철, 석유화학, 기계공업등 핵심 기간산업이 잘 발달
되어 있는 포항, 구미, 울산, 창원등의 신산업도시는 이런 외생적 발전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지방에 진출한 공장은 투자결정등 경영전략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본사로부터 외부통제를 받는 자율성을 결여한 分工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기대한 만큼 지역경제에 기여도가 크지 않고 오히려 환경문제라든지, 소득의 지역외 유출을
가져오는등 구조적인 문제를 낳는다.
포항을 예로 들면, 포항지역의 대기오염 물질 기여도가 가장 높은 오염원은 포항제철과 그
연관단지이다. 포항지역의 SO2와 TSP의 배출원별 기여도는 포항제철 및 그 연관단지가 각
각 88%, 95%를 차지하고 있다. 또 폐수에 의한 수질오염도 문제이다.
한편 인구 유동성도 매우 높다. 교육ㆍ문화시설ㆍ여가시설등 도시기능이 허약하기 때문에
고급두뇌들은 단신 부임하거나 떠날 궁리만 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역경제가
외형적으로는 성장하더라도 대기업의 생산입지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본사는
서울 및 수도권에 입지하여 있어 서울의존적인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성자금의
역외 유출이 심하여 지역경제의 생산력에 비할 때 주민소득의 수혜가 높지 않은 점도 큰 문
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태평양 벨트지역에서 수도권 인근의 철강, 석유,
석유화학등 소재공급형 산업을 대규모 콤비나트에 유치하여 지역진흥을 도모한 경우가 많아
이런 사례가 많다.
일본에서 대표적인 대규모 철강, 석유화학 공단으로서 대판부(大阪府)의 사카이ㆍ센보꾸 콤
비나트와 명고전(名古展) 인근의 욧카이찌시 콤비나트의 경우도 진출한 기업이 환경보전이
나 공해방지 계획을 무시하여 공해 피해가 심각했다. 욧카이찌시의 대기오염으로 인한 공해
병은 일본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례였다.
또 현지에 기여한 사회적 편익도 적었다. 특히 고용효과가 기대이하 였는데, 이것은 소재형
중화학공업이 장치산업이고 또 신규공장이 신설되더라도 기존공장의 진부화나 합리화와 병
행하여 건설된 것으로, 종업원의 태반이 배치전환에 의해 전근된 타지역 출신이었으며, 현지
고용의 경우도 대개 고졸이거나 여자 사무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금이나 지역기
업에 대한 파급효과면에서도 기대 이하였다. 욧카이찌시의 경우 적어도 소득의 1/5이 본사
가 있는 외지로 유출되었다. 또 지역 중소기업과의 관련도 대부분 계열사를 동반 입지하기
때문에 현지 중소기업과의 연계는 토목ㆍ운수ㆍ수리와 청소등 잡업분야에 국한되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소재형 기간산업의 유치가 지역의 소득, 산업생산, 인구의 외형적인 증가
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공해문제나 소득의 유출 효과등 마이너스 효과까지를 고
려하여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볼 때 지역에 대한 기여도는 생각보다 작게 나타난다. 당진경
제도 이런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면 유사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3. 새로운 발전전략을 짜자
더구나 문제는 미국이나 일본등에서는 80년대 후반이후 철강, 조선, 석유화학등 소재형 산
업의 구조조정으로 감량경영을 한다든지, 공장을 폐쇄한다든지 하여 이런 기업에 의존하는
지역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일본 제철소의 대규모 공장이 있는 일본 훗
카이도의 무로란(室蘭)이란 지역에서는 1985년이후 신일본 제철이 갑자기 50%의 경영축소
와 감원을 발표하는 바람에 지역경제가 날벼락을 맞았다. 이 공장에만 의존하던 무로란지역
은 생산과 고용이 갑자기 50%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철강 수요를 겨냥한 한보의 경영정상화가 과연 얼마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철강등 소재, 자본집약부문은 곧 중국과 같
은 후발도상국에 내어주어야 할 것이다. 당진경제는 이번 기회에 대기업 종속경제 체질에서
벗어나 지역발전 전략을 새로 짜야한다.
우선 정부는 ‘특정불황지역 중소기업대책 임시조치법’과 같은 법안을 마련하여 지역내의
하청 중소기업의 구제와 아울러 당진경제의 판을 새로 짜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현
재 정부의 한보관련 조치는 피해기업을 대상으로 하는데, 당진지역의 중장기적인 발전방향
을 겨냥하는 정책이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역민 스스로 자립하겠다는 의지이다. 당진군과 기업인, 마을청년이
모여 ‘지역경제 연구회’를 만들어 새로운 발전전략을 머리를 맞대고 만들기를 바란다. 대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향토자원이나 인력을 가지고 지역진흥을 이룩한 예는 우리나라의 경
우는 드물지만 외국의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의 유수한 산업도시들이 80년대에 불황으
로 고전하고 있을 때,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나가노현이라는 대표적인 산악지역에 있
는 사카키 마을은 인구가 채 2만도 안되는 곳이지만 일본에서도 가장 유명한 기계공업지역
으로 성공했다. 이 사례는 ‘사카키의 기적’이라고 까지 불리우는데 야심에 찬 젊은 마을
청년들이 왕성한 기업가 정신과 연구심으로 새로운 기업을 일구어 낸 결과이다. 대기업도
없고 대부분의 기업이 종업원 14인 이하의 영세 기업이지만 기술수준은 일본에서도 최고이
다.
그외에도 농업과 문화예술을 접목시켜 성공한 사례도 있다.
문제는 주체이다.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 갈 주체를 만들고 여러지역의 사례를 연구하고 혁
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이번 기회에 지역내에서 이루
어지길 바란다.
ㆍ동경대학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역임
ㆍ서울대학교 졸, 충남대학교 경제학 박사
ㆍ쌍용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대전상공회의소 자문위원,
대전시 지역경제협의회 위원 역임
ㆍ「지방재정과 지방금융의 공생적 관계 정립방안에 관한
연구」(한국은행)등 논문, 저서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