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당집에 불지른 이 누구인가?”

95년 5월 새벽4시. 고대리 안섬마을에서는 참으로 불경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백세가 다

된 노인들도 지어진 연대를 모를만큼 오래된 당집에 불이 난 것이다.

해마다 출어준비가 시작되는 음력정월이면 선왕님께 고기많이 잡게 해달라고 제를 지내던

당집이었다. 그런만큼 당집은 이 마을 주민들에겐 신성한 곳이었고 또 경외스러운 곳이어서

주민들은 당집 주위에 심어져 있는 나뭇가지 하나도 마음대로 꺾지 않았다. 가지를 꺾으면

질병이 생기는등 재앙을 입는다고 조상들이 일렀기 때문이다. 그런 당집이 갑자기 일어난

화재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주민들의 안타까움과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화재원인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당집엔 전기시설도 없었고, 화재가 난

날은 전날 내린 비로 온 대지가 축축히 젖어 있었다. 돌발사고가 아닌 누군가에 의한 방화

가 확실하다고 단정한 주민들은 경찰에 범인을 잡아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범인색출에 손을 떼었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

다. 그사이 마을 왼편엔 백만평 한보가 1단계 준공식을 갖고 가동에 들어갔고, 오른편에는

동부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리 해안가, 가장 전망좋은 곳에 위치해 있던 당집터는

‘부르는 게 값’인 금싸라기 땅으로 변해있었다.

주민들이 십수년간 공원처럼 가꿔놓은 이곳에 벚꽃이 만발하는 봄이면 가족들이, 여름엔

시원한 그늘이 좋아 한보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점심한 때 낮잠을 자고 가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땅은 마을주민들 땅이 아닌 외지인 소유였다.

개발과 함께 누구라도 욕심낼만한 땅이 된 당집터. 주민들이 깜깜한 새벽을 대낮같이 밝혔

던 당집 화재사건이 방화라고 심증을 굳힌 것은 그러한 뒷배경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개발과 당집은 아무래도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96년 풍어제를 앞두고 주민들은 궁여지책으로 당집이 있던 곳에 비닐천막을 쳤다. 그렇게

해서라도 풍어제는 지내야 했다. 비단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안섬풍어제가 큰 상을 받

은 위업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개발이다 어업보상이다 해서 각박해진 주민들의 마음을 하

나로 모으고 조상대대로 이어온 전통을 잇고 후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안섬마을을 지켜내

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어서였다.

올해로 2년째 천막에서 당제를 지내야 했던 주민들은 한결같이 당집 재건축을 숙원했다.

그렇지만 당집터로서는 그만이었던 지금의 자리는 어려울 듯하다. 땅주인은 ‘교회를 짓는

다면 그냥 희사하겠지만 당집은 절대로 안된다’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라고 주민들은 전했

다.

당집 짓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새 부지를 구하자면 땅값도 한두푼이 아니어서 주

민들은 정작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일 당제를 지내러 왔던 한 주민은 ‘대제 때 소를 잡지말고 차라리 그 비용으로 당

집터를 사둘걸 그랬다’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선왕님께 바친 제물을 도로 회수하고

싶을 만큼 당집을 지어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지는 강하다 못해 이처럼 비장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