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구/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류 제 원(송산면 부곡리)
재산털어 「실버타운」건립이 꿈
-항일독립투사 2세의 나라사랑-
조선왕조에 연산군이란 폭군이 있었다. 폐정에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임금이 조선왕조 11대 임금인 중종이었는데 개혁정치를 단행하였으니 그 정치주역으로 조광조란 인물이 있었다.
조광조가 17세때 조굉필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히고 있을쯤 하루는 조굉필이 제사에 쓰려고 꿩을 뜰에 말리는데 심부름하는 아이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고양이가 그 꿩을 물고 가버렸다. 굉필이가 화가 몹시나서 그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꾸짖었는데 이것을 본 조광조가 “조상을 받드는 정성은 지극하다고 해도 군자가 얼굴에 노기를 띠는 것은 옳지 않은듯 합니다”하고 말하자 굉필이는 “그렇지 않아도 내 곧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는데 진실로 그대는 나의 스승이요, 내가 그대의 스승이 될 수 없네”하며 사과를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였다.
난세에는 인물이 많이 난다. 이제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류창현(柳昌鉉) 선생도 난세의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류창현 선생은 큰 재주를 가슴에 품고도 그 뜻을 한번 펴보지 못하고 약관 33세에 요사(夭死)(사십이 넘어 죽으면 요사라고 하지 않는다)하였다.
류창현 선생의 호는 선이요 문화류씨 차달공의 33세손이신 지항씨의 다섯째 아들로 송산면 부곡리 비안마을에서 1918년에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성품이 관후하고 행동거지가 돈독하였다. 송산초등학교(5회 졸업)를 거쳐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즉시 일본으로 유학, 명치대학에서 수학중 나라잃은 망국의 한을 깨닫고 구국의봉대를 조직, 항일운동을 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의 옥살이를 하고 추방되어 귀국하게 된다.
류창현 선생은 광복후 짓밟혔던 민족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국민계몽사업으로 중앙통신사를 경영하였고 조선청년회장의 대임을 맡고 임시정부요인들과 수시로 만나 시국을 의논하였다. 또 한국민족사회당을 창당, 당수로 추대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후보로 당진군에서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 류창현 선생의 선거연설을 들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말 잘한다 류창현, 경륜높다 류창현”이라 했다.
류창현 선생은 2대 국회의원 선거직전에 극우파들의 간계로 공산당으로 매도당해 경찰서에 구금되면서 입후보등록서류를 강탈당하고 등록도 못한 채 영어의 몸으로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다. 6.25전쟁으로 정부가 잠시 대전으로 옮겼을 때 이범석 장군의 보증으로 풀려나 고향인 송산면 비안마을로 돌아왔다.
당시 국토의 대부분이 공산군에게 점령당했었는데 고향에서 은거하고 있는 류창현 선생을 공산당원들이 체포해갔다. 인민군이 북으로 쫓겨갈 때 8월 16일(음력) 송산면 밤절 뒷산에서 애국지사 50여명과 함께 손을 철사로 결박하고 총을 난사하니 한많은 세상을 마감, 33세에 요절했다.
류제원씨!
류제원씨는 91세의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있는 효성지극한 아들로 사업에 바쁜 시간을 쪼개가면서 69세의 노년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젊어서는 남이 손대지 않은 요새말로 벤처기업에 작수했다. 사출기로 묘반공장을 차렸고, 제재소, 벽돌공장, 정미업, 건축업등 다양한 사업을 하였으나 하는 사업마다 재미를 보았다.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과 특히 막네 작은아버지 류창현씨의 음덕으로 생각합니다”하고 조상의 음덕으로 공덕을 돌린다.
류제원씨는 류창현 선생의 조카요, 문화류씨 가문의 장손으로 류창현 선생의 제사를 47년째 뫼시었고 4월 6일에는 애국지사 류창현 선생의 추모비를 세운 장본인이다. 물론 추모비를 건립하기에는 류창현 선생이 생존시 그분의 경륜과 정치이념을 함께하던 동지인 신이균, 손인교, 이병기씨등 17명의 건립추진위원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47년간 작은아버지, 류창현 선생의 제사를 뫼셨고 추모비도 세워드렸으니 작은일이지만 제가 해야할 일은 끝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작은아버지의 자손들에게 제사를 뫼시도록 해야지요.”
류제원씨가 출생한 송산면 부곡리 비안마을은 산세가 기러기가 날으는 형상이라 하여 비안(飛雁)이라 이름이 붙여진 마을이다. 류창현 선생의 유택은 기러기 등에 해당하는 곳에 마련돼 있다. 기러기의 등을 타고 하늘로 비상하는 형이니 그 후손들은 모두 각자의 길에서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류제원씨의 사촌으로 류제현씨가 있고(전국회의원, 현 신평고등학교 이사장), 대학교수 및 실업가로 활약하는 사촌들이 많이 배출됐다. 그리고 제원씨의 세째아우인 류제웅씨는 신평고등학교장에 재직하고 있고 신평고등학교를 설립한 것은 류제원씨의 부친과 작은아버지 형제분들이 세웠던 것이다.
류제원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한다. 그동안 모은 재산과 3~4년 더 사업하여 소득을 얻는 재산을 합해 고향에다 노인들을 위한 아파트를 건립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실버타운」 5년내에 착수할 것이나 유ㆍ무료, 규모등은 그때가야 확실한 것이 나올것이라는 것이다.
류창현 선생의 추모비문은 이제룡씨의 찬으로 그 첫머리에 “웅장하구나! 아미산의 기절한 봉우리여! 힘찬 산맥이 구불구불 수십리”
아미산의 정과 기를 받고 사는 당진군민들은 숨겨진 우리선배들의 선행과 덕행등을 발굴하여 후세들의 귀감으로 삼게 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군민들의 힘을 모아야 될 것이며 힘은 샘물과 같이 안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다. 각자의 마음의 샘을 먼저 파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