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숙현 / 한우리독서문화원장
그동안 벼르던 편지를 이제서야 쓰게 됩니다. 안녕하시지요.
서둘러 걷지 않아도 되는 퇴근길에 오랜만에 올려다 본 하늘은 너무도 푸르렀습니다. 그 푸르름 사이로 갓난아이 손바닥만한 미류나무잎이 지는 해를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얼마만에 누려보는 여유인지 모릅니다.
여러길을 두고도 이쪽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는 것은 낮은 담장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 정성스레 가꾸어진 꽃밭,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살림살이를 엿보는 재미 때문이지요.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집들이 남아있다는 게 여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원칙없는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은 자연환경을 훼손하지만 추억마저 빼앗기기는 싫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구두를 생각합니다. 그 임자가 바로 저라는 것도... 독서문화원에서 늦은 공부를 끝내고 가는 상숙(※)이는 늘 제 구두를 신기 편하게 반듯하게 놓아 두고 갑니다. 평소에 그런 대접을 받아오지도, 해오지도 않은 저로서는 송구스럽고 황송하기까지 합니다. 그깟 구두 하나 가지런히 놓아준 것을 가지고 유난을 떨려는 게 아니라 마음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작은 것이지만 남을 배려한다는 게 사랑스런 일이지요. 살짝 그 일을 하면서 실어 보낸 정을 헤아리노라니 절로 행복해집니다.
일본에서 생활공동체 ‘후에로 마을’을 세웠던 하나후사 료스케씨가 누군가가 공동체적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노인이 “그것은 화장실의 슬리퍼를 남들이 쓰기 편하게 돌려놓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거창하고 근사하게 보이는 것이 최고로 대접받는 세상에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하는 따뜻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다음에 또 편지 드리지요.
※이상숙:당진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