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학 / 석문면장
“열정 쏟으면 안되는 일 없다”
“뚜렷한 업적과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떠나려니 아쉽기만 합니다.”
오는 6월 30일자로 30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임종학 석문면장. 겸손한 말로 퇴임소감을 대신하는 임면장은 공직생활내내 그랬듯 퇴임을 앞둔 지금까지도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부지런함을 과시하고 있다.
동료나 부하직원이 승진해 하나하나 전출할 때가 관리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다는 임면장은 그러나 정작 자신은 직급에 연연하지 않고 욕심없이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불의의 사고로 부하직원이 사망했을 때 연대책임을 지고 6개월 감봉조치를 자청했던 과거일도 비록 가슴아픈 일이지만 상사로서 당연한 처신이었다고 말한다.
임면장은 공직생활중 가장 어려웠던 때로 불과 14개월동안 송악면장으로 근무했던 때를 꼽았다. 한창 쓰레기처리장 문제로 면사무소 앞마당에 쓰레기를 쌓아놓는등 큰 민원이 있을 때였는데 11개월을 꼬박 주민설득에 나서 숙원사업을 우선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해결을 보았던 것.
임면장은 바로 이때 “열과 성을 다하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 군청에 근무할 때 세수증대 우수상과 병무행정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도 노력의 댓가는 반드시 주어진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고.
집안일을 돌볼 겨를도 없이 면행정의 최고책임자로 최선을 다해왔다는 임면장은 남아있는 후배들에게 법에 위배되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법규연찬을 숙지할 것과 특별히 저축을 많이 하라고 당부한다.
사회초년생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임면장은 체력이 뒷받침해주는 한 공직에 있을 때 배운 것을 사회에 실천하고 끝까지 인간다운 삶을 살것이라고 다짐한다.
ㆍ1938년 석문면 교로리생
ㆍ1968년 당진읍 초임발령
ㆍ당진읍 재무계장, 대호지 부면장,
군위민실장, 세무조사계장, 병사계장,
보건행정계장
ㆍ고대면장, 대호지면장, 송악면장, 석문면장
ㆍ군수공로표창 3회, 도지사표창 2회,
내무부장관상 표창, 국방부장관 표창
ㆍ부인 한유헌씨와 2남2녀
강병대 / 농촌지도소 지도기획계장
“온 젊음을 농촌에 바쳤습니다”
농업센타건립 완결못짓고 떠나 아쉬워
“어려운 때에 농민편에서 일하고 온 젊음을 농촌에 바쳤습니다.”
30년 세월을 농촌지도사업에 헌신해온 강병대 지도기획계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맡아 추진해온 지역농업개발센타 건립사업을 완전히 마무리짓지 못해 무언가 할 일을 못하고 나가는 것 같다며 퇴임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강계장은 ‘특별히 해놓은 것은 없어도’ 오늘날 농촌이 이정도의 수준에 오른 것은 농촌지도사들이 힘을 합해 일해왔기 때문이라며 뿌듯해 한다.
그러하기에 최근 농업의 비중이 축소됨에 따라 일각에서 농업관련 기관도 통폐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농민들만큼은 농촌지도소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강계장은 농촌이 발전하기 위해선 논농사 위주에서 소득작목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며 아울러 정부에서도 물가안정등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에게 항상 옛날과 같이 농촌지도소를 찾아주시고 의논해 달라고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강계장은 후배지도사들에게도 ‘기회주의와 줄서기식이 아닌 소신껏 최선을 다해 일할 때 남는 것이 있다’며 열심히 소임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1938년 고대면 진관리생
■1968년 정미지소 초임발령
■서산 지곡지소, 예산지도소 근무
■당진군 농촌지도소 교육훈련계장,
지도기획계장
■군수공로표창, 농촌진흥청장 표창,
도지사표창
■부인 박향진씨와 3남1녀
민석홍 / 대호지면 농민상담소장
“수입개방으로 어려울 때 떠나 안타깝습니다”
“수입개방으로 점점 농민들이 어려워지는 때에 퇴임하는게 안타깝습니다.”
대호지면 농민상담소 민석홍 소장은 식량자급을 위한 녹색혁명에서 사시사철 질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백색혁명(비닐하우스 농사)을 일구어 내기까지 32년간을 오로지 농촌소득증대를 위해 헌신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도회지에 비해 생활소득이 낮은 농촌을 두고 떠나는 것이 민소장은 안타깝기만 하다.
비록 보릿고개로 어려웠지만 젊은이들이 많아 4H회를 구성하고 농사기술을 강연했을 때, 그리고 70년대 자전거를 타고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녹색혁명을 일으킬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민소장은 그때 4H회원들이 지금은 중견농민이 되어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그 회원들이 전부 농촌에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상당수는 농촌을 등졌습니다. 그동안 농촌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미흡하다보니 후계인력육성에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죠.”
민소장은 또한 농촌인력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도사수를 줄인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기술보급이 중심이 될 앞으로의 전망을 따져본다면 현대과학 영농을 지도할 지도사의 확충은 꼭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일단 1년은 재충전의 시기로 삼고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연구해 보겠다는 민소장은 아무리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농촌이 어려워도 농촌의 소득과 생활여건이 도시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ㆍ노력해 달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1938년 순성 아찬리생
■1965년 당진군 농촌지도소 초임발령
■송산지소장, 정미지소장, 농민상담실장
■정미ㆍ송악ㆍ서산 음암ㆍ대호지면
농민상담소장
■농촌진흥청장 공로표창
■부인 송용순씨와 4녀1남
퇴임을 앞두고
이재원 / 순성면 농민상담소장
농민과 가장 가까이서 동고동락
1967년도에 농수산부 발령으로 당진군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 꼭 30년을 농민들과 가장 가까이서 동고동락해온 이재원 순성농민상담소장. 아직도 농촌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함없다는 이소장은 나이로 봐선 더하고 싶다며 퇴임을 못내 아쉬워했다.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사람을 다뤄야 하는 일이기에, 농사일이 하루아침에 발전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만큼 어려움도 많았다는 이소장은 70년대 고대면 장항리에서 새마을 주재지도사로 농민들과 6년간 함께 지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때는 지도사가 학교 선생님도 되고, 탁아소 보모도 됐지요. 농민들과 함께 자고 밥먹으며 공동작업도 하고 문맹퇴치를 위해 한글교육도 하고, 고생은 많았지만 보람있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과 3년간 공들여 키운 소를 소값파동을 맞아 본전도 못뽑고 내다 팔아야 했을 땐 그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이소장은 이제는 아무런 준비없이 맞이한 수입개방으로 풍전등화에 놓인 농촌실정이 안타깝기만 하단다.
“60~70대가 농촌인구의 대부분인 지금엔 뾰족한 대안은 없으리라 봅니다. 앞으로 10년후 이 세대가 지나면 농업에도 전환점이 있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기업영농으로 갈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지요.”
워낙 변화무쌍한 우리나라의 농정을 30여년간이나 겪어 왔기 때문일까? 이소장은 지도사 생활엔 ‘인내’가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농정이 이랬다 저랬다 변화가 많아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선배들처럼 인내하고 열심히 일하다보면 지금보다 분명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집에 있으니 잡념만 생겨 아파트 경비원이라도 해볼 계획이라는 이소장은 오랜만에 채소밭을 가꾸며 농사는 이론만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경험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한다.
■1938년 순성 옥호리생
■1967년 농수산부 발령 군청 주재근무
■태안군 지도소, 자원개발계장,
고대ㆍ정미ㆍ순성면 농민상담소장
■농촌진흥청장 표창
■부인 구본희씨와 1남3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