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아한 날개짓

한번만 다시 보았으면”

겨울 채운들 수놓던 수천마리 학

50여년전 떠난 뒤 오지 않아

드넓은 채운들을 마주하고 있는 고대면 항곡리 이 마을 노인들은 매년 이맘 때쯤이면 옛생각이 부쩍 많아진다.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어르신들이면 누구나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잦지만 항곡리 노인들에겐 마치 집단 향수병 같이 공통적으로 그리워하는 무엇이 있다.

추수를 끝낸 썰렁한 채운들에 수천마리씩 떼지어 날아와 겨울 한철을 나고 떠나곤 했던 두루미. 항곡리 주민들은 이 두루미의 울움소리를 온종일 들으며 한가로운 겨울을 보냈었다.

1월25일, 항곡리 경노당에 모인 노인들의 화제는 여전히 두루미였다.

“예서 한 두놈이 춤추기 시작허먼 제서 여러놈이 더 세게 날개짓을 했지.”

“울음소리는 어떻구. 낮이구 밤이구 지륵지륵 했어.”

“몸땡이는 전부 하얀디 날개 끝만 까매서 오무리고 있으먼 꽁지가 까만 걸로 보였대니께.”

벌써 반세기 전의 풍경이었지만 노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또렷이 두루미를 기억하고 있다. 채운들에 학이 많이 날아든건 먹이가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추수를 끝낸 들엔 벼이삭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던 역천은 두루미떼에겐 먹이의 보고나 다름없었다.

특히 채운들 한복판에 홀로 서있는 정자나무 주변에 학이 많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옛날 황씨라는 사람이 심었다 해서 ‘황정자’라고 불린다는 이 나무는 두번의 경지정리를 하는 동안 없어질 위기를 겪었으나 항곡리 주민들은 탄원까지 내는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정자나무를 지켰다고 한다. 학도래지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채운다리에 올라가서 보면 더욱 장관이었다는 두루미떼는 그러나 6.25를 겪으면서 다시는 채운들에 날아오지 않았다.

“해방 후에 엽총을 마구 쏘는 사람덜이 많았어. 6.25 때도 여기가 격전지는 아니었지만 여기저기서 총소리 나고 했으니께 놀래서 안 온거여.”

세월은 흘러 채운들에 날아든 학을 보았던 젊은이들은 이제 반백의 노인이 되었고 지금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얘기만 듣고 반신반의 하며 머릿속으로 학을 그려볼 뿐이다.

그래서 항곡리에서는 얼마전 마을입구에 ‘학 도래지 고대면 항곡리’라 쓰인 표지판을 세웠다. 후손들에게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뿐 아니라 살아 생전 그 우아한 날개짓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노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이 표지판에 담겨있다고 이봉우 이장은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