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구/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이 택 수(합덕읍장)
때로는 너의 인생에서 정신나간 선행을 실천하라
중요한 것은 결실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이다 - 간디-
이택수씨가 73년에 읍으로 승격한 합덕읍에 32대의 읍장으로 행정책임을 맡은지 꼭 1년이 되는 오늘!(이택수 읍장은 96년 7월 15일 부임). 읍장이나 필자나 감회가 남다름을 교감하였다. 본란을 4년 가까이 집필하는 필자로서는 합덕의 많은 리장들이 이택수 읍장을 추천하였음이 처음있는 일이었고 읍장 자신은 고향에서 읍장으로서 1년을 지냈음에 대한 감회였던 것이다.
“때로는 너의 인생에서 엉뚱한 친절과 정신나간 선행을 실천하라. 중요한 것은 행위의 결실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다. 옳은 일을 해야한다. 지금 당장 그 결실을 얻는 것은 당신의 능력밖일지도 모르나 더 나중의 시대에게 돌아갈 몫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그 옳은 일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당신의 행동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얻어질지 당신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과도 없을 것이다”(간디).
이택수 읍장!
이택수씨는 읍민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읍장이 되는 것을 제일의 신조로 삼고 행정이나 읍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가고자 노력하며 읍직원 64명 모두에게 이런 뜻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신뢰받는 행정이며 참 공무원상이라고 이택수 읍장은 강조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특히 이택수 읍장은 합덕읍 서동 출생으로 합덕초등교와 합덕농고 출신이다. 합덕읍민 거의 다 선후배로 얽힌 소읍.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못받는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는데...
이택수 읍장은 이런 입지적인 어려움을 깊이 통찰하고 말과 행동에 있어 자제(自制)란 비상무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자제란 타율에 의해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의 약속이며 질서인 것이다. 그리고 삶의 양식인 것이다. 자신의 질서요, 삶의 양식(樣式)이기 때문에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나 괴로움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택수씨는 읍민들을 왕과 같이 섬기는 것이고 스스로는 아주 작은 존재로 낮추며 살고 행정을 처리하는 철학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관찰함에 있어 먼저 그 행동하는 것을 보며, 다음은 행동의 동기를 보며, 다음은 행동의 목적을 살피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공자의 말씀)
이택수 읍장!
이택수씨는 8시 정각에 읍사무소에 출근한다. 다른 직원들보다 비교적 빠른 출근인데 이는 책임과 의무감에서 오는 자연적인 현상일 것이다. 청사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8시30분에는 간부(계장급)들과의 간담회를 갖는데 어제 있었던 일의 점검과 오늘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대화모임이다.
시간의 질이 공직자들의 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내용이 삶의 내용을 좌우하는 것이다. 직원 상호간의 대화의 시간은 너와 나와의 거리를 좁히며, 상하간의 높이도 줄이는 것이다.
이택수 읍장은 9시부터 10시30분까지 결재와 민원인들과의 만남을 갖는다. 민원인들과는 사소한 문제점이라도 같이 걱정하고 해결될 사항이면 즉시 해결해준다. 과거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신뢰하고 믿게 하고 열린행정을 목적으로 진실한 공무원상을 확립하고 봉사하는데 바치는 시간인 것이다.
10시30분 이후에는 관내 출장, 주로 리장쪾부녀회장들을 만나 행정지침사항의 진척을 점검하고 주민들의 걱정거리들을 같이 한다. 때로는 부엌에 앉아 점심을 같이 하면서 소탈하게 거리감없는 얘기를 이끌어갈 때도 있다. 오후에는 시내권을 돌며 읍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읍장은 매주 2회정도는 합덕읍의 33개리를 순방하는데 발로 뛰면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읍장인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로서 과잉보호의 가족제도하에서 자랐으므로 대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꺾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인(成人)이 되어 여건이 갖추어져도 자기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왕왕 보게 되는 것이다.
이택수 읍장!
이택수씨가 합덕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친의 병환으로 가세는 기울어져 부친이 경영하는 정미소가 남의 손에 넘어가 빈궁을 맛보아야 했다. 졸업후 서울로 올라가 남대문시장에서 자전거 행상을 2년 했다. 작은 보따리가 큰 보따리로 늘어나고 하나가 둘로, 셋으로 늘어날 때 징집되어 군에 입대, 헌병으로 대전에서 근무했다. 군에서 제대하기 전 대전에서 영수학원에 다니면서 공무원시험에 응시, 농업직에 합격해 제대와 함께 66년 9월 면천면의 서기보로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택수씨는 85년, 신평 부읍장을 거치면서 군의 각계의 계장으로 재직, 95년에는 행정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삽교천 관리소장, 96년 7월 15일 합덕읍장으로 옮겨 앉았다. 슬하에는 2남1녀를 두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55세.
“선행(善行)은 모래에 쓰여지고 악행(惡行)은 바위에 새겨진다”는 격언이 있다. 선행은 쉽게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일인데 열성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앞날은 밝고 희망적인 것이다.
겸손하면서 유순하고 아낌없는 봉사, 바로 오늘 우리들이 바라는 공무원상일 것이다. 그래서 이택수 읍장을 가슴이 넓은 사람, 가슴이 따뜻한 읍장이라고 많은 읍민들이 애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