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구/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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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운(우강면 대포리)

10분을 이용한다는 것, 이것이 모든 일에서 성공을 낳는 비결이다

땡볕더위, 불볕더위, 이제는 가마솥더위까지 상승했다. 연일 35℃에 고정된 날씨도 어렵거니와 밤에도 열대야(熱帶夜)현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가마솥 더위에 3천여명의 손이 일시에 치켜들었다. 땀을 비맞은 듯 흘리면서 환경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유공 석유단지 석문공단 입주반대 결의를 한 것이다. 치켜든 손으로 2년전 그 사람을 선출했는데 그사람은 나무그늘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서 있었는지?(본보185호 화면참조)

세계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을 든다면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세계사를 질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프랑스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프랑스혁명은 파리시민의 바스티유감옥 습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789년 7월 14일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자”는 혁명가 “카미유데물랭”의 선동에 고무된 파리시민들은 파리시내 바스티유 감옥을 향해 몰려갔다. 그들의 목표는 감옥내에 있는 다량의 무기였다. 바스티유 감옥은 왕의 절대권력의 상징이었으므로 그 악명은 실로 대단했으며, 왕을 비판한 사람들이 이곳에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다.

파리시민의 봉기는 “앙이앵레검”이라고 불리는 낡은 신분제도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었던 것이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나라에서 일본제국자들의 식민지 학정에 반대하여 온 국민이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해였다. 그후 연합국에 의해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고 국토는 분단된 것이다. 금년이 52년째의 해이나 아직 통일조국을 이루지 못한 한을 갖고 있다. 북쪽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데 남쪽의 사람들은 돈을 마구 써댄다.

엊그제 김포국제공항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광객 숫자가 출ㆍ입국 합해 5만명이 넘는다 했다. 가마솥 더위에 진땀을 빼는 얘기꺼리만 들린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으나 더위를 다스리며 식혀 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김영운씨!

우강면 대포리, 30여년전에는 퍽이나 시끌거리던 포구(浦口)였다. 물때를 따라 인천으로 가는 똑딱선이 닿은 곳이었다.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고 생필품을 싣고 내리는 번창하던 곳이었는데 삽교천 제방을 쌓은 후에는 한가한 농촌으로 변했다.

김영운씨는 이러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지켜오면서 68년간 대포리에서 살고 있다. 무더운 날씨를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질문에 “한낮에 낫을 들고 논두렁 밭두렁의 풀을 깎으며 땀을 흠뻑 흘린 후 집에 들어가 등목을 하면 그렇게 시원하면서 정신도 맑아진다”고 하신다.

김영운씨는 유년시에는 가난한 살림에 또 엄한 부친의 만류로 신식공부 즉,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또래의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부럽고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잡을 수 없어 헌 책, 새 책 가리지 않고 사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보았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몇년을 했다. 어려운 수학문제도 쉽게 풀리는 재미를 느껴가면서...

미국의 제29대 대통령 “가필드”가 대학생 때였다. 과친구 중에 수학만큼은 수석을 놓치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지는 걸 싫어했던 “가필드”는 그를 따라 잡으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노력한 보람도 없이 수학은 언제나 그 학생이 우수했다. 어느날 밤 공부를 마친 “가필드”는 잠자리에 들려다 그 학생의 방을 보았다.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오던 불빛은 10분후에 꺼졌다. 그 순간 “가필드”는 “그래 바로 이 10분이었어”라고 깨달았다. 그는 다음날부터 그학생보다 10분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 시간에 그만큼 수학문제를 풀던 “가필드”는 마침내 수학에서도 수석을 차지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가필드”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10분을 이용한다는 것, 이것이 모든 일에서 성공을 낳는 비결이다.”

성공의 비결은 참으로 간단하다.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많이 먹고 늦게 자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김영운!

김영운씨는 3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 자신의 쓰라린 과거의 가난, 힘든 육체적 노동의 농사등을 생각하면서 자녀들에게는 열심히 배우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가난과 무학의 인생을 살게 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더욱 열심히 일했다.

김영운씨는 인생을 당당하게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게 살고 있다. 비록 학교라는 간판은 갖지 못했지만 대중앞에서 조리와 이론이 꽉차게 말씀하시는 등 모든 사람들의 놀라움을 사게 한다. 지금은 원대포리 노인정의 회장과 경주김씨 우강면 종친회장으로서 후덕함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탈무드에서 아내를 고를 때에는 층계에서 한발 내려서고 친구를 고를 때에는 층계에서 한발 올라서라고 하였다. 정말 사귈만한 친구란 그저 술이나 마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보다는 늘 팽팽한 지적자극을 주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마땅하다.

공자께서는 유익한 벗과 해로운 벗에 대해 “정직한 사람을 벗삼고 진실한 사람을, 그리고 견문이 넓은 사람을 벗으로 삼으면 유익하다. 그러나 형식만 차리는 사람, 대면할 때만 좋아하는 사람을 벗으로 삼으면 해롭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