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포에 자리 잡은 대다수의 피난민들은 어업에 종사했다. 이들은 대게 황해도에서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이거나, 논·밭이 많지 않은 곳 포구에 정착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거리가 어업이었기 때문이란 것이 구술자들의 말이다.
박상진 씨는 “깔판포구에 터를 잡은 피난민 대부분이 바닷일을 해서 먹고 살았고 조금씩 돈을 벌어 배를 장만했다”며 “황해도, 함경도 등지에서 온 피난민들이 낭장망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어민들이 낭장망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차준희 씨는 “포구에서 생선을 받아 동네마다 팔러 다니던 아주머니들 대부분도 피난 온 분들이었다”면서 “생선상자 위에 참나무, 도토리나무 가지를 꺾어다 얹어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고, 생선값으로 받은 곡식을 집까지 다시 이고 오곤 했다”고 말했다.
피난민 2세대인 민태진 씨는 1952년 맷돌포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와 첫해는 한정초등학교 부근에서 남의 집 셋방에 살았다. 이후 맷돌포구에 움막을 짓고 산비탈에 밭을 일구며 살았다고 했다.
“한정리에서 남의 집에 계속 살 수 없으니 맷돌포로 이사간 거죠. 옛날에는 맷돌포 석화산 주위에 집이 하나도 없었어요. 산 턱 평지에 조그맣게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바다 일을 하신 거지. 내가 알기로는. 그 당시 맷돌포구 선착장이 짤막했는데 이 바다에서 고기가 엄청 나왔어요. (아버님과 같은 피난민 1세대들은) 고기 같은 거 잡고 새우 같은 거 말려서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