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중공군의 공세에 유엔군이 서울 이남 지역까지 철수한 1.4후퇴로 수많은 피난민이 발생했다. 이때 당진에도 피난민들이 배를 타고 대거 유입됐다. 맷돌포구 역시 피난민들의 유입지 중 하나였다.

맷돌포구와 깔판포구를 통해 유입된 피난민들은 매산리와 신흥리 등에 정착촌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난민들은 초기에 주민들의 집마다 방을 빌려 살았다. 이후 정부에서는 매산리 깔판과 신흥1리에 거처를 마련해 피난민들이 이곳에 정착촌을 이루고 산 것으로 알려졌다. 구술자들에 의하면 당시 깔판포구 인근은 소나무밭과 야산이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이 곳에 피난민들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이다.

박상진(매산1리) 씨는 “우리 집에 당시 방이 세 개였는데 피난 온 분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니까 빌려줬다”며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서 조그맣게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인심이 좋았어. 오늘 우리 저녁밥 먹고, 내일 아침에 해먹을 쌀이 한 되 밖에 안 남았어도, 옆집에서 저녁을 못 먹고 있으면 다음날 같이 굶더라도 그 남은 한 되를 가져다줬어. 그때 피난 온 사람이 깔판에 많았지. 우리 집 근처에 다섯 집, 지금 사시는 분만해도 일곱 분이야. 배 하나에 숱한 사람이 다 타고 와서 신흥리라는 데랑 여기에 정착하고 살았어.”

당시 피난민은 매산리에 15세대, 맷돌포에 13세대, 운정리와 공포리에 10세대, 신흥1리에 50여 세대가 살았고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현재 피난민 1세대는 매산리에 8세대, 맷돌포에 3세대가 남아 있으며 그 2세들이 살고 있다.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