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뿌리’라 불리던 공포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통해 옛 포구에 대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옛날 우리 살던 집이 포구하고 멀어야 300m쯤 떨어졌을까. 바로 바닷가 모래사장 앞이었어. 그때 선창도 없어서 돌을 징검징검 짚고 다녔지. 새우 같은 거 잡으러 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어. 거기에 장수바위가 있었어. 장수가 앉았던 의자라고도 하고 장수의 발자국이라고도 했지. 바위에 움푹 파인 데가 있는데 물이 쓰면 그게 드러나는 거야. 거기에 올라서서 물이 들어오면 옛날에 ‘사닥’이라고 그물을 둥그렇게 채반처럼 만들어서 자루를 기다랗게 매달아서 만든 게 있어. 그걸 물 속에 넣었다 건지면 새우가 완전 많이 들었지.” (김영분)
김영분 씨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공포에서 중선을 부렸던 故 김수남 씨의 맏딸로, 여전히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김 씨의 구술에 의하면 현재 삽교호방조제 배수갑문 인근이 공포였다. 이곳을 통해 주변 어민들의 어선과 인천행 증기선이 기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포 주변은 1~2km 가량 모래해변이 형성돼 있었고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났다. 이런 김영분 씨의 기억은 김기호·장복환 씨 등의 기억과도 일치했다.
“어릴 때 우리 집이 배수갑문 근처였어. 지금 이걸(삽교호방조제) 막아서 그렇지. 모래 해변이 있고 물이 빠지면 모두 갯벌이었지. 배수갑문에서 한 500m쯤 올라오고 또 맷돌포 쪽으로 500m 정도 내려갈 만큼 모래사장이 있었어. 한 2km 정도될 거야. 나머지는 물이 빠지면 갯벌이고. 그때는 선착장이란 게 없고 큰 돌을 놓고 징검다리로 건너다녔지. 징검다리를 건너면 거기서부터 다 바위인데 거기에 장수바위가 있었어.” (김영분)
“원 선착장이 저 배수갑문 있는 데야, 거기에 장수바위라고 있었어. 공사하느라 다 부서졌지. (1960년대 공포는) 전부 초가집이었어. 선착장 옆에 옛날 어른들이 할머니가 앉아갔다고도 하고, 구두 발자국이라고 하는 움푹 파인 데가 있었지. 그리고 대부분 산이었어. 둑을 막느라 이 산을 다 파버렸지.” (김기호)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