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먼저 자기를 알고 남을 위할 때 빛이 난다

채 수 운 합덕읍 중동

오늘의 물질문명은 잘못된 길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식을 잘못 사용하고 재물을 올바르지 못하게 사용하는 탓으로 정치, 경제, 사회 어느구석이나 흔들거려 정신들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이 아는 지식을 무엇을 알려는데 사용하기 전에 “자기인식” “자아발견”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모르는 자이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도덕경에서 우리들에게 일침을 놓았던 것이다.

중국 격언에 “견지망월”(見指忘月)이 있는데 풀이하면 “현자가 달을 가리킬 때 모든 바보들이 보는 것은 현자의 손가락이다”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잘 표현했다. 지식은 먼저 자기를 아는데 사용하고 남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할 때 참으로 빛이 나고 진가가 발휘된다.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위에서 한 장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지나가던 행인이 하루에 통행인에게 얻는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걸인은 고개를 흔들며 불과 2달러가 안된다고 슬픈듯이 대답했다. 행인은 걸인의 가슴에 매달린 플랭카드를 뒤집어 무엇인가 한줄 써 넣었다. 그리고 걸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마도 당신의 수입이 훨씬 늘 것이오. 내가 다른 글을 써 놓았으니, 한달후에 내가 다시 올 때 결과를 알려주시오.”

그리고 한달후 어느날 과연 걸인은 다시 나타난 그 행인에게 감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으리 참으로 감사합니다. 요사인 하루에 10달러에서 15달러까지 수입이 오른답니다. 한데 대체 나으리께서 써넣으신 그 귀신같은 글이란 어떤 것인가요?”

행인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썩 간단하죠. 원래 당신이 가슴에 써 있던 ‘나는 나면서부터 장님’이란 말 대신에 ‘봄은 오건만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썼을 뿐이죠.”(프랑스 시인 로제가유와의 글中에서)

채수운씨!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세상에 인화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는 맹자의 말이다.

정치를 하는 요체는 공정과 청렴이고, 집안을 이루는 도는 검소와 근면이라 했다. 이것저것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한테서 느끼기 어려운 인간미를, 조촐하고 맑은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한테서 훈훈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우리 주변에는 흔히 있고 늘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람들중에 한 사람이 채수운씨와 그 가족들이다.

채수운씨는 3대째 가업(家業)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합덕제면, 즉 국수집 며느리로 15년전에 시집온 사람이다.

채수운씨!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인생에서 만남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한 가족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좋은 만남으로 가정의 평화가 깃들어 구순해지고, 그 집안의 가업도 번창하게 된다.

채수운씨는 타고 난 어진성품에다 조신스러운 행동거지,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심성, 그리고 친정집과 시집의 생활의 법도, 이런것들이 양가문에 손색이 없는 가정에서 몸에 젖고 베어들어 연로한 시부모님을 모시며 가업인 국수공장을 대를 이어 끄는 견인차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합덕제면은 윤병규(74세)가 선친이 경영하던 국수집을 이어받아 오늘과 같은 규모의 제면공장으로 가업으로 전수되게끔 대를 이어온 분으로 예나 지금이나 맛과 품질등 변합없이 일등품으로 생산하여 합덕과 근동은 물론 멀리 당진읍, 예산까지 널리 알려진 국수이다. 이런 토대위에 채수운씨는 윤씨가문의 며느리로 들어오면서 더욱 정성을 쏟아 더 좋은 품질의 국수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채수운씨는 윤씨집안의 며느리로 노시부모 봉양의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이웃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아버지인 윤병규씨도 며느리 자랑에 조금도 가식없이 말씀하신다.

“우리 며느리는 우리내외 봉양은 말할 것 없이 잘하고,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누구를 가림없이 대접을 한결같이 하고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다”고 하면서 “요새 젊은이들에게 바라지도 못할 선향 제사상 차림도 정갈하고 맛의 고유함을, 그리고 제사의 예절에도 한치 틀림이 없다”고 하신다.

채수운씨가 젊은 며느리로서 노부모님을 잘 봉양함과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데도 그 나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노력을 사랑으로 승화시킴에 있어 자신의 진정한 희생이 따라서 이룩된 것이다. 이러한 희생적인 사랑이 태어나는 곳에 이기적인 자기는 죽기 때문이라고, 이로써 평화롭고 집안에서 웃어른의 크고 작은 소리가 나오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채수운씨는 신평면 금천리에서 누대로 농사를 짓는 집안의 6남매의 첫딸로 세상에 나와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보아왔고 배워서 익혀 가정적인 교육을 잘 받았던 것이다. 학교 졸업후 서울의 모고등학교 서무과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중매로 만나 오늘에 이르렀다. 자녀 남매를 둔 30대 중반의 젊은 며느리!

젊고 왕성한 때는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좋은 젊은 때를 놓치지 말고 더 열성으로 노력하여 노부모를 뫼시고 가업을 더욱 번창시킬 것을 이웃 모두가 바라고 원하고 있다. 또래의 젊은 부인들이 채수운씨를 추천하면서 “조선시대의 여자” “이조시대의 여인상”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으면서 선망으로 채수운씨를 바라보는 눈빛을 볼 때 필자의 마음에도 뭉클함이 치솟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