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춘 지 반년이 됐지만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비정상이었던 것들이 이제 정형화된 하나의 삶의 양식이 돼버렸다. 그 여파로 여권통문의 날도,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도 모두 중단돼간다. 이 시국에 여성단체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중단해야 하느냐 하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 펜데믹 전과 후의 삶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택트로 통하는 비대면 서비스, 온라인쇼핑, 화상회의, 초·중·고의 온라인 원격수업, 재택근무 등 우리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120여 년 전 9월 1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인권선언문이 선포된 날이다. 1898년은 한국근대사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이다. 명성황후가 일본군부에 의해 시해당하고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의 수난을 겪는 혼란기였다. 동시에 이날은 한양 북촌에서 김소사, 이소사(소사: 기혼여성을 일컷는 말) 두 여성을 필두로 300여 명의 여성들이 모여 여권통문을 선포하고 여성의 참정권·직업권·교육권 등을 주장하며 현대 여성운동의 역사적 기원이 됐다.

실제로 이들은 한국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설립하고 지원금을 모아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사립 여학교인 순성여학교를 설립해 여성인재 교육에 힘을 썼고 이를 황성신문, 독립신문 등에 전문이 발표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특히 유교적 가부장제에 갇혀 살아왔던 여성들에게 직업을 통한 사회진출 및 경제적 독립과 다양한 전문직으로 진출을 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또한 3.1운동과 국채보상운동, 항일투쟁운동 등 구한말 개화기에 여성들의 적극적인 계몽활동으로 사회진출을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여권통문이 선언된 날을 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해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지난 2019년 10월에 국회본회의를 통과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다. 미국 여성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3월 8일 세계 여성의날 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앞서있기에 큰 의미를 더할 수 있다.

9월 1일 여권통문의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고 펜데믹 상황인 올해에 여권통문의날을 처음으로 기념하게 돼 아쉬움도 크다.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는 법정 기념일인 여권통문의 날을 기점으로 올해부터 여권통문의 날과 양성평등주간을 함께 기리고자 준비했다.

올해는 ‘변화의 시대, 양성평등, 새로운 기준의 중심이 되다’라는 슬로건으로 행사를 기획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작가 초대전’을 개최해 약 일주일 동안 그림을 전시하며 당진의 중견 여성 작가들을 격려하고, 당진여성들의 일자리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당진여성 JOB컨퍼런스’를 기획했다. 기념행사로는 ‘이숙영 토크’와 당진지역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여성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당진시민을 위한 콘서트를 준비했지만 코로나19의 위력은 이 모든 것을 잠재우고 말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은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 안에서 아직도 변하지 않는 성평등 부분들이 있는데 여권통문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영역들이 사회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미국의 멜린다 게이츠 이사장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에 발표된 논문에서 “코로나 이후의 여성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며 “정책입안자들이 코로나19가 여성들에게 불균형적으로 미치는 충격을 살펴보고 전염병 피해를 완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여성의 역할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의사결정 영역에서 여성이 포함되는것이며 여성시민단체를 활성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번 위기로 오래된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더 풍요롭고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통문의날에 평등문화 확산을 기대하며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다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