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송산면 해안지대에 일어난 변화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1919년 발행된 송산면의 일제 강점기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나란히 두고 보면 그 변화는 더욱 놀랍다. 1919년에는 현재 송산면의 내륙지역에 해당하는 삼월리, 무수리, 당산리, 송석리는 물론이고 동곡리와 유곡리가 모두 바다와 접해 있다. 남양만을 향해 툭 불거져 나와 있는 성구미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연유로 송산면에는 지금도 바다와 관련된 옛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곡리와 동곡리가 대표적이다. 바다가 막히기 전 두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다. 성구미포구가 대표적인 포구로 이름이 남았지만, 이전에는 가곡리와 동곡리 해안가 곳곳에 나루터가 존재했다. 옛 지명을 토대로 주민들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1919년과 현재의 송산면 지도를 놓고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현대제철과 그 연관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는 지역이다. 가곡리와 동곡리에 걸친 이 일대에서 있었던 첫 간척사업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왜정시대에 막았던 둑 안으로 가동염전이라고 있었어. 이후 가동방조제가 막히고 난 뒤에 생긴 염전은 가곡리 신판이라 했었지. 왜정시대에 막았던 둑 안이 구 가동염전이지.”
유희준 씨는 90년대까지 가동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해 왔다. 그에 따르면 성구미와 동곡리의 두멍개를 잇는 가동방조제가 놓이기 이전, 일부 간척사업이 진행돼 가동염전이 운영 중이었다. 이후 1960년대 초 송악면 출신 황학성, 문장일, 안영목, 이우영 씨 등이 간척사업을 진행했다.
“염전 만들 때, 그때 내가 16~17살쯤 됐을겨. 그땐 다 사람이 지게로 흙을 파고 날라서 염전을 만든 거야. 왜정 때 바다를 막아 놨으니께 그 안은 다 뻘판이었을 거 아냐. 거기서 흙을 골라서 염전을 만들었지. 그 후에 막은 가동방조제는 ‘밀가루 공사’라고 해가지고 일시키고 밀가루로 품삯을 주고 그랬어.”
가동방조제 간척사업은 미국이 원조한 480밀가루를 노임으로 지급한 것으로 일명 480밀가루사업의 정식명칭은 미국 공법 480호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이다.
가동방조제가 건설돼 가동염전 신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구판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두멍개 등에 정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형이 두멍처럼 생겼다 하여 두멍개라 이름 붙었다는 이곳은 두포 또는 두포리라고도 부른다.
우현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