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랜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있는 보호수와 누구도 찾지 않는 열녀문, 그리고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들이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지도 모르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본지에서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취재를 통해 기사와 영상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영상은 유튜브 ‘당진방송’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됩니다.

너른 들판과 호수, 야트막한 구름이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난 대호만. 이곳을 배경으로 붉게 떨어지는 아름다운 낙조는 보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인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갖춰져 있는 대호지면 적서리는 당진 시내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어 소외된 지역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떨어져 있기에 이 지역만의 풍습과 문화가 여태껏 살아있는 곳이다.
붉은 쥐를 의미하는 ‘적서리’
적서리는 붉을 적(赤)자와 쥐 서(鼠)자를 써 ‘붉은 쥐’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붉쥐’라고도 불리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붉은 쥐가 많아서 또는 마을 지형이 쥐를 닮아서 적서리라고 이름 지어졌다는 등 주민들마다 기억하고 있는 지명 유래는 저마다 다르다.
주민들이 알고 있는 쥐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적서리 내 돛배라는 자연부락에 고양이바위가 있었다. 그러나 쥐가 고양이에 약한 것처럼, 붉은 쥐인 적서리가 고양이바위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고양이바위를 없앴단다.

삼신할매 노하게 만든 선녀들
현재 적서리는 5개 반으로 구성돼 있지만, 과거에는 다양한 이름을 지닌 자연부락이 있었다. 선녀골, 개시리길, 돌개(캐)길, 한다리 등이다.
송연덕 적서리 마을회 총무는 “적서리에는 토속적인 자연부락의 이름이 많다”며 “지금도 자연부락 이름을 주민들이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여러 자연부락 중 5반에 해당하는 ‘선녀골’은 선녀바위가 세워져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마을주민들이 칠월칠석날이면 선녀바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선녀바위는 원래부터 지금의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도로 폭을 확장하면서 길옆에 있던 선녀바위를 옮겼단다. 그때부터인지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고 마을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칠월칠석날 선녀바위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선녀바위에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바위가 바로 삼신할매의 공기돌이었다는 것이다. 삼신할매들은 해마다 정초에 모여 공기놀이를 했는데 그 중 제일 젊은 삼신할매가 실수로 공기돌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산신령의 하사품 공기돌을 잃어버린 것을 산신령이 알게 되면 노여워 할 것을 우려해 삼신할매는 공기돌을 찾기 시작했다. 며칠을 찾던 삼신할매는 결국 선녀골까지 오게 됐고 마침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던 선녀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선녀가 이를 거절하자 삼신할매는 화가 나서 선녀가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사라져 버렸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는 삼신할매가 잃어버린 공기돌에 앉아서 하늘나라를 그리며 살다가 끝내 죽었다고 한다.
또한 적서리에는 재미난 전설을 담은 문화재(?)도 있다. 막을 방(防)자와 도적 구(寇)자를 써서 난지섬 쪽에서 왜구가 처들어올 때 바위 뒤에 숨어 물리쳤다고 전해져 오는 ‘방구바위’, 힘이 센 장수가 굴을 들었는데 장수 손자국 지금도 남아 있다는 ‘장수굴’ 등이 그것이다.

120년이 된 용 그려진 농기
적서리에는 용 그림이 그려진 오래된 농기도 있다. 농기는 풍물대 가장 앞에 섰던 깃대를 말하는데, 한 마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깃발이다. ‘농산기’, ‘대기(大旗)’, ‘서낭기’, ‘용기(龍旗)’ 등으로도 불린다. 풍년을 빌기 위하여 동제를 지내거나 두레 때 마을의 상징으로 농기를 세워두며, 이웃마을과 화합 또는 경쟁할 때에도 농기를 내세운다.
이 농기에서는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온 푸른 용의 위엄이 느껴진다. 색감도, 용의 발톱 등 세세한 부분이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왔다. 적서리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과 음력 2월 초하루,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머슴날(농군의 날)이면 볏가릿대를 세우고 농기를 꺼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를 지냈으며, 당진을 대표해 출전하는 각종 농악대회에도 이 농기를 앞세우고 참가했다. 당진의 각 마을 농기가 한 자리에 모이는 기지시줄다리기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고.
지난 2012년 KBS TV쇼 진품명품 프로그램에 나와 감정평가를 받은 결과, 이 용기(龍旗)는 100년 이상 된 것으로 그 당시에도 좋은 물감을 사용해 변색이 되지 않았다며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현재 이 농기는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3~4일 동안 이뤄진 장례식
한편 적서리는 지역 풍습이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지역이다. 10년 전까지만해도 적서리 주민들은 각자의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지금의 장례문화는 현대식 장례식장에 가서 잠시 조문하고 나오는 것이지만, 옛날에는 3~4일 동안 망자의 집에서 동네 사람들과 장례를 치렀다. 또 지금은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하지만 당시에는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난방을 하지 않은 방에서 시신을 모셔놓았다고.
현재 적서리에는 차씨 종친회가 상여집과 상여를 보관하고 있다. 차경열 이장은 “100세 넘게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에도 상여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다”며 “그 상여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12명이 상여를 들고 5km를 돌았다”며 “그때는 미신 때문에 길을 건너면 안돼 마을을 뱅글뱅글 돌았다”고 회상했다.
더불어 적서리에서는 5개 반으로 나눠 연반계를 운영하고 있다. 연반계는 계원과 그 가족의 초상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비용을 상부상조할 목적으로 조직된 모임이다. 차경열 이장은 “옛날에는 보리, 쌀 등으로 연반계 회비를 냈는데 지금은 1만원 씩을 모아 상주에게 전달한다”며 “지역의 오랜 장례풍습이 사라져 가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송연덕 총무 역시 “지역의 젊은 층들이 마을의 문화를 잘 보존, 계승해 나가야하는데 고령화로 어려움이 있다”며 “장례문화 뿐만 아니라 농악놀이 등도 어느날 갑자기 뚝 끊겼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귀농·귀촌인 증가 추세”
한편 현재 적서리에는 173가구에 256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인 만큼 60~70대가 주민들의 평균 나이다.
최근에는 귀농, 귀촌하는 이들도 하나 둘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차경열 이장은 경기도 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12년 전 고향인 이곳을 찾았고, 송연덕 총무 역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천에서 유학하며 학교와 직장을 다니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6년 전 고향을 찾았다.
송연덕 총무는 “내 나이가 올해로 66세인데 적서리에서는 젊은 층에 속한다”며 “젊은 주민들이 마을의 전통을 잘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적서리를 잘 지켜와준 어르신들에게 고맙다”고 덧붙였다.
마을 발전 위한 사업 추진
적서리는 올해 우리마을 사랑운동과 마을 만들기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마을 발전을 위해 여러 계획도 세웠다.
차경열 이장은 “우리마을 사랑운동의 일환으로 나무 가지치기나 화단 조성 등을 하고 있다”며 “또한 우리마을 비전체계도를 만들어 추진해 나갈 다양한 사업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적서리는 ‘구름 사이 신비로움 가득한 대호만 불끈 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대호만 경관 조성, 호박고구마와 쌀 등의 농산물을 활용한 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마을대표 한마디>

김성진 노인회장
“저는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79년 간 평생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주민들이 고령화돼서 지역원로로서 애타는 심정입니다. 빨리 코로나19가 끝나 노인회원들이 악수하면서 즐겁게 막걸리 한 잔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차경열 이장
“청정지역이면서 인심도 좋은 적서리가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민 여러분들께서 서로 단합하고, 지역 일에 조금만 더 신경 써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적서리가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것입니다.”
송연덕 총무
“적서리는 풍요로운 마을입니다. 낚시와 휴양을 즐길 수 있고 낙조도 멋진 곳이죠. 주민들이 합심해서 즐겁고 재미있는 마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