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만공·벽초스님 수법제자 혜안스님이 사는 법

-불기 2545년 석가탄신일 특집-

버릴 것 버린 자리에서 그 분이 가꾸는 것

혜안 큰스님이 계신 곳은 광덕사였다. 광덕사는 수덕사를 가기 위해 놓인 길 위에, 그러나 거기서 훌쩍 떠난 자리에 단촐하게 앉아 있었다. 아담한 절.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정성이 간 꽃나무들은 조그만 절 마당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혜안 큰스님은 우리나라 근대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대선사의 뒤에서 만공, 벽초, 혜안에 이르는 덕숭산 선맥을 이어오고 계신 분.

스물 다섯 나이에 출가해 벽초스님으로부터 “혜안(慧眼)”이라는 법명을 받고 그 수법제자로 줄곧 수덕사에서 만행을 해오신 스님은 11년전 이곳 광덕사로 도량을 옮기셨다. 예순 일곱의 나이에도 대중법회와 주변 관리, 청소를 몸소 하고 계셨다. 찾아오는 손님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스님은 시간과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저를 ‘보시’하는 일이니까요. ‘보시’는 필요한 곳에 자신을 내어놓는 일 아닙니까?”

이러다 보면 한사람과 서너시간씩 대화를 나누게 되는 날도 있다. 스님은 초하루가 지난 날을 틈타 찾아간 기자에게도 많은 시간을 내주셨다.

하지만 그것은 그동안의 수없이 많은 인터뷰와 취재 요청을 거절해오신 스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치고는 정말 뜻밖이고 감사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 스승들이 그러했거니와 혜안스님은 출가 후 지금까지 편지 한 장, 글 한 줄 써내신 일이 없을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일에 철저했다.

“허허. 제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요. 그러니 높고 시끄러운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 산 속에 살죠. 그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것이 스님의 겸손이자 세상에 대한 역설이다.

이쯤 되면 스님을 찾는 언론과 기관의 예민한 더듬이가 지칠 법도 한데 그런데도 그 촉각이 무뎌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스님이 잇고 계신 법통과 높은 도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운 사랑 때문이다. 의탁할 데 없는 노인이나 아이들에게 베풀어온 스님의 사랑은 이미 소문이 나버렸다. 그래서 명예로운 도민상에도 추천되었지만 이 역시 거절했다.

게다가 스님 슬하에는 오십명이 넘는 가솔들이 있다. 오갈 데 없어 맡겨진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 스님 아래에서 훌륭한 청년들로 자랐다. 그중에는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있는 아이들도 있다. ‘지혜가 없으면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들을 염려할 때 스님은 늘 이런 생각이 앞선다.

꽃나무를 가꾸는 마음 역시 미물들에 대한 사랑이다. 스님의 작은 화단에는 여기저기서 목말라 죽어가던 분재 화분들이 몰려와 옹기종기 사랑을 받고 있다. 마침 방안에 들어온 파리 한 마리를 살짝 내려치시면서도 ‘좋은 세상 가거라’ 하는 생각이시다. 전생의 업에 따라 이 세상에 잠시 잠깐 미물로 왔을 뿐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수라와 인간과 천상, 이 육계(六界)를 돌고있는 영혼의 윤회를 스님은 보고 계시다.

스님이 기거하시는 방은 재래식 원룸이다. 일반주택 건넌방 만한 크기의 방에 손님 맞는 거실과 침실과 탁자가 다 모여있다. 거실이란 곳은 옆에 치워놓았던 차 탁자를 끌어당기면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그 뒤로 침상용 매트리스가 하나 깔려있다. 그 옆에 구식 책상이 놓여있다. 아무것도 가리지도 치우지도 않았다. 그것이 전부다.

“난 가난하지 않아.” 스님은 또 허허 웃으신다. 왜냐하면 가난은 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생각에서 오기 때문이다. 스님이 정말 부자라는 사실은 차 탁자 옆에 수북이 포개져 엎드려 있는 찻잔들을 보면 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이고 다녀가다 보면 어느 때는 이 찻잔들이 다 기어나와 있다니까!”

뭐가 유쾌하신지 스님은 또 허허허 웃으신다.

정작 스님을 뵌 것은 올해가 부처님 나신 지 2545년 째 되는 해인 데다 지금이 그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 오신 날의 뜻을 묻는 어리석은 질문에 한시도 얼굴에 미소를 풀지 않고 거침없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것을 다 옮길 능력도 이해할 능력도 내게 없다는 것이 애석한 일이다. 끙끙 앓으며 더듬어보다가 스님 말씀의 한 가닥만을 여기 옮겨본다.

“부처님은 한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 분은 결코 남을 구원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장차 한 나라의 왕이 될 신분으로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사람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에게 닥친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 출가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 것입니다. 부처님은 거기서 산고를 겪으며 울부짖는 여인을 보고 자신이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고, 등이 굽어 비틀거리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자신 역시 늙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을 보고 병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 성밖으로 나가는 상여행렬을 보고 자신 역시 언젠가 죽게될 것을 알았습니다. 왕이 된다한들 결코 이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왕위 대신 깨달음을 위한 고행에 들어가신 겁니다.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고, 석가의 깨달음이 광대무변하기 때문에 그 깨달음 안에서 비로소 고해중생인 우리가 사는 일의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마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양식으로 ‘영혼’이라고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 선업(善業)이 쌓여 있으면 좋으나 사실은 온갖 악업(惡業)과 탐하는 마음, 노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증오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서 쉬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따르는 것이고 이 도량은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참회로써 자신의 죄와 마음을 씻어내는 참회의 도량입니다. 날마다 참회하며 마음을 닦는다면 그만큼 마음이 맑고 선해지겠죠. 안그래요?“

스님은 그러니 의무적으로 교회에, 절에 가지는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곳들은 참회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특히 자신들의 종교를 고집하는 것에 대해 “종교를 알았으면 종교를 버리라”는 전통적인 말로 종교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바라볼 것을 권하신다.

“선과 악이 한마음에 있으며 지옥과 천국이 한 마음안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세요. 물 흐르듯이. 슬퍼하고 기뻐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느끼고 보내세요. 하나가 있어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고통인 줄 알면 고통이 아닙니다.”

스님은 절 아래 오솔길까지 배웅해 주시며 “기쁨은 다 가족들에게 주고 괴로움만 싸가지고 오세요. 그걸 저에게 주세요”하신다.

스님께서 주신 재래종 벚꽃 한 줌이 저녁나절에 다 시들었다. 애석했다. 그러나 스님 말씀처럼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