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면천군에 비바람, 인마가 죽어
충청도 면천군(沔川郡)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 인마(人馬)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서산군(瑞山郡)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 운무(雲霧)가 사방을 가리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듯이 내려서 큰 나무가 죄다 뽑혔다. 한참 있다가 그쳤는데, 그 고을에 사는 한 여자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청주(淸州)에 사는 백성 한 사람도 벼락을 맞아 죽었다. (인종 1년 5월30일, 충청도에 재변이 일어나다)
31일 ◆면천군 안인수씨 파종비 기부
충청남도 면천군 승선(昇仙)면 승선리에 거(居)하는 안인수(安仁洙)씨가 동민등이 춘궁(春窮)을 당하여 생활할 정도가 곤란하고 낙종(落種)할 희망이 전무함을 긍측(矜惻)히 생각하여 금화 20원을 해동중(該洞中, 그 마을)에 영구히 기부하고 연연히 식리(殖利)하여 동민(洞民)의 극빈한 자로 하여금 파종작업(播種作業)을 하려하는 고로 동민 일동이 안씨의 자선권업(慈善勸業)함을 막불감복(莫不感服)한다더라. (매일신보 1911년 5월31일)
모든 역사는 자연과의 어우러짐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번 주에 관련된 사료가 별로 없어 두 기사만 실었다.
우선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당진관련 기사로 면천에 폭풍우가 내리고 벼락이 쳐서 피해가 컸던 모양이다. 지금도 사람이 벼락맞아 죽으면 대단한 사건인데 조선시대에는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과학이 크게 발달치 않았던 시대이고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 이 때문에 자연현상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적으로 모든 역사는 자연과의 어우러짐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와 국가의 전쟁은 물론이고 민심의 동요, 각종의 반란, 반대로 태평성대의 유지도 당연히 자연현상과 관계있다.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던 15세기 세종대왕 재위시의 지질학적 움직임을 되짚어 보면 가장 안정적이었고 자연재해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고로 불행하였던 19세기 조선말기의 민란발생기를 보면 지질상 매우 불안정하였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각종 자연재해가 빈번하고 전염병이 난무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는 민심의 악화로 이어지고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함께 참혹한 시대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역사를 더욱 진보, 발전키 위해서는 우리의 자연환경을 보다 정성껏 살펴야 한다는 논리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기사는 선행기사인데 승선면은 현재의 송악면이고 승선리는 반촌리이다.
안인수씨는 당시 반촌리지역에서 대단한 부호였던 것으로 보아진다. 자세한 관직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조선신사보감(朝鮮紳士寶鑑, 1913)에 보면 1878년(戊寅) 12월6일생으로 한학을 주로 공부하였는데 그 성적이 뛰어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고 되어 있다.
본관은 광주(廣州)로 지금도 인척들이 반촌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손자되는 분이 교직에 있었는데 현재는 서울에서 산다고 한다.
자료조사·글 : 김남석(nsk6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