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승 환
한터우리문화연구소장
우리집 ‘바다’는 며칠전부터 내가 저를 망신시키고 있는 줄 모르고 오늘도 집에 가면 컹컹 짖으며 뺑뺑 돌다가 터프하게 안길 것이다.
“바다야, 너를 망신시키라고 억지를 핀 사람은 당진시대 삼촌, 고모들이란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자식들이 모두 나가 텅비게 생활하는 우리집은 늙은 절간 같다. 가끔씩 밖에 있던 놈들이 오는 날에는 잔치집이 되고 집안에 활기가 돈다. 그것도 하루쯤이고 그후에는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밥을 해놓으면 이틀도 먹고 김치를 담가도 열흘씩 간다. 정수기 물은 하루에 한번 뽑아 먹기가 바쁜 사정이다.
이런 내 나이가 되면 손주 봐주고 얼르면서 며느리, 사위 재미를 보며 살아온 것이 우리 어른들이셨다. 애들 결혼이 늦은 우리는 손주는 꿈도 못꾼다. 이런참에 꼬마 ‘바다’가 온 것이다.
이 ‘바다’가 보물노릇을 할 줄은 마음도 못꾸던 일이었다. 보물이라며는 값이 나가는 물건 아니면 희귀한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일컫는 것인데 공짜로 얻은 튀기 강아지가 보물이라니, 그러나 우리 집안을 울리고 웃기고 말썽을 시피면서 우리집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고놈이기 때문에 분명 ‘바다’는 우리의 보물이다. 그런데 이 보물단지가 순식간에 애물 보따리로 변한다.
어느날 아내가 어머니 저녁상을 당신 방으로 차려드렸는데 “애비, 애비” 급히 부르셔서 가보니까는 쌜쭉하신 얼굴로 “여기좀 봐” 생선접시를 가르키신다. 두토막이 놓였던 접시에 한토막만 있다. “생선가시 걸리셨남유?” “고게 아니라 저, 저 ‘바다’가 내 삼치조림 물고 내뺐어” 애기 같으신 어머니를 뵈니 솟구치는 웃음을 참는데 “느네들이 나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쬐끄만 강아기까지도 내 삼치를 넘보...” 말씀 끝나기전에 그여 내웃음이 터졌다. 별안간 내가 웃어제끼니까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날치기 당하신 당신 자신이 멋멋하시고 모양이 우습게 되신 것을 느끼셨는지 허리를 쥐고 당신도 웃으신다.
팔순의 우리 엄마를 네살짜리로 만드는 재주꾼은 우리 ‘바다’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