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원기자와 함께 만든 코너
이번주 ‘마당’은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학생들의
당진 탐방기로 구성됐습니다.
객원기자로 애써준 학생들과 취재에 협조해주신 주민·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객원기자 탐방기는 계속됩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들의 겨울
폭설, 붕괴, 철거, 그리고 재건축! 그들의 꽃은 언제 다시 필까?
벌써 여름이다.
하지만 변해 가는 계절을 느끼지
못하고 지난 겨울 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눈' 하면 “그냥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젠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폭설 피해 농민들.
합덕읍 묵성리의 화훼농가를 찾았다.
폭설 그리고 또 다른 상처
지난 1월7일 새벽 3시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침 8시경, 화훼단지 비닐하우스를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5시부터 6시 사이 거의 모든 비닐하우스가 쓰러져버렸다.
“어찌 손을 쓸 수 없었죠. 그냥 막 무너지는데…”
그날을 상기하는 이순구(당진군 폭설피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런 폭설은 농민들의 비닐하우스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마음을 휩쓸어간 것은 눈 뿐이 아니었다. 폭설피해 이후 정부의 내린 정책에 농민들은 다시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농민의 피부에 와 닿는 보상은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강조하며 이보성(합덕화훼작목반 회장)씨는 말한다.
현재 정부에서 폭설피해 농민들을 위해 실시하는 보상은 피해면적 평당 8만2천640원의 보조금과 35%의 지자체·정부가 합쳐 주는 보조금, 그리고 55%의 융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서진 시설을 재건축할 경우라는 전제가 붙는다.
폭설로 인해 출하되지 못한 꽃에 대한 보상이나 그동안 일궈온 것에 대한 보상은 없다. 다만 무너진 시설을, 그것도 재건축 할 때만 시설비를 지원하겠다니 이런 보상들이 농민들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도 처음에 평당 6만2천640원의 보조금과 지자체, 정부의 보조금 25%였던 것을 폭설피해 농민들의 집단시위와 9번에 걸친 국회방문을 통해 간신히 얻어낸 대책이다.
자녀 넷 중 둘이 대학을 다닌다는 이보성씨는 현재 불량거래자로 정부에서 해주는 55%의 융자도 받을 수 없는 신세다. 그런데 이 불량거래자라는 것이 현재 당진군 합덕읍의 화훼농가단지에 한 두명이 아니라고 한다.
“안××이, 안××이 때문이여.”
같은 화훼 농업을 하던 안××씨의 보증을 섰다가 대여섯 명 정도의 농민들이 그가 갚지 못한 빚 때문에 모두 불량거래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에서 폭설피해 농에게 해주는 55%의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버린 것이다.
농협에서 재해농민에게 주는 55%의 융자를 받으려면 농신보에서 보증서를 써주어야 하는데 불량거래자인 농민들에게 농신보에서 보증서를 써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량거래자에서 벗어나 55%의 융자혜택을 받게 된다 해도 어찌했든 농민들이 다시 갚아야 할 부채가 아닌가?
이렇게 농가들은 지금까지 서로 보증을 서주고 불량거래자가 되는 악순환을 계속해왔다.
대출이나 융자의 기준이 능력이나 기술, 그동안의 평가가 아니라 자산이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폭설피해 농민들을 위해 신용한도를 늘려도 이는 농민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정부의 대책으로는 도저히 이번 폭설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묵성리 화훼농민 33명 중 10명이 재건축을 포기했다. 하지만 재건축을 결정한 사람들도 걱정이 없고 미래가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
“비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이 앞으로 나가자니 죽을 것 같고 뒤로도 갈 수 없고 흘러가다 돌이라도 밟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하는 거다.”
화훼농민 이순구씨의 심정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화훼의 붐이 조성된 초기에 화훼를 시작하게 된 이순구씨 같은 농민들은 지금까지 이자만 갚다가 그동안 정부에 진 빚의 원금을 상환해야할 시기가 왔다.
폭설피해로 인해 꽃을 출하하지도 못했고, 작년부터 일본 수출길이 나빠지기 시작해 온실 기름값 정도만 건졌을 뿐인데 이도 농민들에게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정부에 이 돈을 갚지 못한다면 또 몇명의 불량거래자가 탄생하게 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어요.”
이보성씨는 현재 6~7천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데 폭설대책 보상비가 220~230만원이라고 한다. 이 돈도 갚는 시기의 연장일 뿐이다.
“도망갔으면 좋겠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취재 도중 농민들이 한 말들이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이번 일에도 농림부에 아무리 하소연을 해봐도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을 적게 주어 어쩔 수가 없다며 서로들 책임을 회피하느라고 바빴다.
“농민들의 어려움은 잘 알고 있지만 도울 방법이 없다.”
당진군청 산업수산과 재해담당 이동희씨의 말이다.
공무원의 영향력이 큰 것이 아니기에 정부에서 내려오는 정책들을 원활히 시행하는 것과 지자체 보조금 지원 등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그는 말한다.
당진군청에 의하면 당진군 폭설피해 농가는 전체 농가 39,000호 중 1,500호에 이른다.
현재 화훼농가들은 재건축이 한창이다. 7월~8월이면 시설들이 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동시설은 자동화 시설이기 때문에 또 다시 무너진다면 재건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재건축을 하고 있는 농민들이 자비를 들여 좀더 굵은 파이프로 외곽을 짓고 있는 것이 전부다. 다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그들의 긴 겨울은 언제 끝날까.
진향임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