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선
대전·충남참여자치연대
지역운동연대 집행위원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 학교는 왜 대응하지 않습니까?”
일본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구마모토현(熊本)에 있는 한 시민단체 간부가 충남의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간부는 “정말 한국이 왜곡된 교과서의 불채택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느냐”고 재차 물어 왔단다.
지난 6월초, 충남지역 교사, 농민, 목사 등 각계각층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충남도와 오랜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구마모토현을 찾아 현지 시민단체와 함께 시·정·촌 지방의회, 교육위원회 등을 돌며 왜곡된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라는 요구와 함께 불채택 주민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굽은 역사를 바로 잡으러 왔다’는 이들의 결연한 요구와는 달리 현지 행정 및 교육관료들의 반응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충남도의회 교육사회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구마모토현을 방문해 자연공원과 가와데가와 댐 등을 둘러보고 간지 불과 열흘남짓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도의원들은 내친김에 도교육청 고위 간부들과 함께 일본 오이타현 교육청 초청에 응해 교육·복지시설 및 비파호수 등을 찾아 나섰다.
충남도는 한술 더 떠 지난 4일 도청 회의실에서 구마모토현 산림과장 등 6명을 초청, 양 지역 업무추진 실태와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한 행정협의회를 가졌다. 도는 또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홍보한다며 내년 3월까지 일본관광객 4000명 유치작전에 돌입했다.
물론 왜곡 교과서를 문제삼아 그동안 쌓아온 양국 지역간 교류관계를 올스톱 시키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왜 하필 지금’ 일본교육청의 초청에 응해야 했고, 교과서 문제에 대한 일체의 언급 없이 행정협의회를 열고 관광객 유치에만 열을 올리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한·일 교류사업 축소’라는 대국민 발표가 왜 지방자치단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는 얘기다.
더구나 일본의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교육위원회)가 교과서 채택 권한을 갖고 있고 문제의 ‘새역사교과서(후쇼샤)’가 아이들의 책상 위에 펼쳐지느냐의 여부가 이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관료들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명분으로한 ‘침묵’은 속을 상하게 한다.
결국 실제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몫이라며 ‘강건너 불 구경’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정부는 재수정안을 전달한 이후 손을 놓고 있다가 2곳 수정이라는 ‘창피한 결과’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정부는 때늦게 강경대응을 소리 높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각 자치단체에서는 왜곡교과서가 이미 채택됐거나 속속 채택되고 있다. 일본정부가 시간이 지나면 한국의 반발은 ‘제풀에 꺽일 것’이라는 낙관은 이같은 연유에 기인한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제풀에 꺽이지 않는’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 작업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야 한다. 일본의 자매결연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결의안을 채택해 전달하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항의 방문 등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자치단체와 일본 자치단체간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곳은 일본 규슈지역만도 80여 곳에 이른다. 각 지역교육청과 학교별 자매결연의 경우는 숫자 파악이 어려울 만큼 많다.
충남시민단체의 현지 방문활동에 힘입어 일본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가장 보수우익적인 고장으로 이름나 있는 구마모토현의 한 지방의회에서 최근 문제의 ‘후쇼사’교과서의 채택을 부결시킨 선례도 있다.
시간이 없다. 지금은 지자체와 일선 교육기관이 나서야만 왜곡교과서 채택을 막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