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을 잡은 유라와 나라가 첫 박을 울렸다.
이윽고 “둥둥 두둥둥...” 홍규, 민섭, 수지, 윤수, 환진이가 ‘북’을 쳐서 리듬의 분절을 명확하게 그어주었다. 연지, 이슬, 다나, 선호의 손끝에선 ‘장고’ 장단이 날카롭게 때로는 나긋나긋하게 춤을 췄다. 야물고 높은 소리가 나는 미래의 꽹가리와 부드럽고 낮은 소리가 나는 지민이의 꽹가리는 서로 밀고 당기며 점점 기세를 몰아갔다.
운동장 한켠에 징, 북, 장고, 꽹가리의 진동으로 어우러진 ‘소리의 공간’이 생겨났다.
‘요즘 아이들이 과연 전통음악을 좋아할까.’ 이렇게 혀를 차는 사람이 있다면 이 아이들의 연주를 들어 볼 일이다.
신평초등학교(교장 신현문) 4·5·6학년 13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사물놀이 연주팀. 국내외 유수의 대회에서 거둔 수상경력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의 사물놀이 공연을 한번이라도 듣게 되면 고사리 손으로 만들어 내는 사물의 조화로운 소리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풍물악기는 서양 악기와는 달리 한 악기를 혼자 연주하면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리가 되지만 네 가지 악기의 소리가 모아지면 흥겨움과 신명의 소리를 내게 됩니다. 사람을 모아지게 하는 소리, 즉 공동체의 소리가 되는 것이죠. 이들은 비록 초등학생들이지만 소리의 신명을 알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97년 부임하던 해 사물놀이반을 맡아 이제껏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이미라(33세·신평면 금천리) 교사의 말이다. 현재 이미라 교사는 다른 학교로의 전근도 유보하고 사물놀이반을 맡고 있다.
신평초교에 사물놀이반이 생긴 것은 지난 97년. 처음엔 취미활동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해 운동회 때 가진 발표회에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기 전까지는. 이때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물놀이반은 정식 동아리가 됐다. 처음엔 음악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물놀이반을 구성했다. 그러던 것이 ‘내 아이도 들게 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요즘은 배우고 싶어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사물놀이반 프로그램을 개방하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갓 짜놓은 비단과 같다. 비단은 물감을 칠하면 칠하는 대로 물들어 버린다. 사물놀이반 아이들도 처음엔 우리 가락에 생소해 했지만 이내 전통음악의 신명과 음악적 감성에 물들어 갔다. 자연스레 장단을 두르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추임새를 넣는가 하면 이제는 ‘잘된 소리, 잘못된 소리’를 구분할 줄 아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꽹가리를 칠 때는 오로지 가락만 생각해요(미래).”
“북에 열중하면 가슴이 상쾌해져요(환진).”
“호흡 조절을 잘 해야 해요. 제 리듬이 깨지면 전체가 흔들려요(윤수).”
‘연주할 때 무슨 생각을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진지하게 연주에 임하고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물놀이의 장점들이 아이들 모습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간식으로 먹은 쓰레기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치우고, 무거운 물건도 서로 들어주곤 합니다. 함께 어울려서 최상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사물 악기처럼 아이들도 배려하고 도와주는 생활습관을 터득했습니다.”
이미라 교사는 이러한 아이들의 변화를 “음악이 몰래 전해 준 선물”이라 일컫는다.
현재 신평초교 사물놀이반에게는 해결해야할 어려움들이 있다. 우선 악기 구입과 지방 대회에 참여하는 데 드는 비용이 해결돼야 한다. 좀더 전문적인 기능을 가르쳐줄 지도교사도 필요하다. 그리고 5년째 연습실 하나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어려움이 해결돼야 한다.
“여러 난관 속에서도 훌륭히 성장한 아이들입이다. 하지만 정작 아쉬운 것은 졸업을 앞두고 있는 6학년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해서도 사물놀이를 계속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미라 교사에 따르면 지민이는 서울 국악 중학교를 지망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민이가 서울이 아닌 당진을 목표로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아까운 국악 인재 하나를 잃는 것은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다.
※ 풍물반 주요 수상경력
2000. 6. 20. 학생 사물놀이한마당대회. 우수상
2000. 10. 6. 제6회 전국농악경연대회. 금상.
2000. 10. 29. 제9회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대회. 3위.
2001. 4. 28. 내포국제풍물제. 최우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