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하잖아. 우리 다시해” “저... 누나, 처음부터 다시 하면 안될까요?”
손으로 입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가 없다. 겨우 고개를 끄덕여주니 상은(3학년)이가 새로운 배경음악을 튼다. 다시 ‘프리즈(힙합의 정지동작).’ 10초간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멈추어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학생들. 중심을 못잡고 여기서 ‘쿵’, 저기서 ‘픽’,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꼼짝마!’ 했을 때의 표정이 저러할까. 지켜보던 여학생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무대위 남학생들의 양볼도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을볕이 참 좋다싶은 날, 고대중학교(교장 김승태)의 힙합동아리 아이들을 만났다.
“정말 잘할 수 있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러나 몰라요” 30여분간의 천진스런(?)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 앉자마자 성진(3학년)이가 못내 아쉬운 듯 한마디한다. 아이들 모두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평소 때는 잘하는데 아마 긴장했나 봅니다. 역사가 1년도 안된 힙합동아리에는 전문강사가 없어요. 그래서 인터넷이나 녹화해둔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춤동작을 연습합니다. 아이들의 노력만으로 저만큼 춘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힙합동아리를 맡고 있는 이남일(38세) 교사의 말이다. 그는 교단에 서면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수학교사지만 교실을 떠나면 힙합동아리의 ‘대부’로 통한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춤동아리의 대부로서 자신있게 출 수 있는 춤은 한가지도 없다고 한다.
“사실 선생님은 텔레토비보다도 못 춰요” 유선(여·3학년)이의 심상치 않은 대답에 이남일 교사의 표정을 살폈지만 인정한다는 듯 만면에 싱글벙글 웃음이다.
“정서순화, 심신수련, 자기개발에 좋아요. 웃지 마세요. 모두 맞는 말이에요. (김용철·3학년)”
“힙합은 취미에요. 취미는 곧 특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노유림·여·3학년)”
“부모님 모르게 집에서 문 잠그고 연습했어요. 지금은 이해해 주시지만 가끔씩 ‘춤 춰봐라’하실 때는 도망가고 싶어져요(장유선·여·3학년)”
“스트레스가 싹 가셔요. 토머스(손을 번갈아 짚으며 V자형으로 도는 동작)가 가장 자신 있어요. 대학교수가 꿈이에요. 힙합 추는 대학교수, 멋있죠?(박승민·3학년)”
“강당이 생기기 전까지는 교실 한구석에서 연습하느라 바닥 청소는 저희가 다 했어요(박은주·여·3학년)”
학생들과 가진 2시간여의 유쾌한 대화시간. 몸이 유연해져서 뿌듯하다는 효건(3학년)이, 기성 춤꾼들 중에서 ‘리버스’를 가장 좋아한다는 홍민(3학년)이, 현란한 움직임 때문에 힙합에 매료됐다는 성진이,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춤의 대가인 상은이까지. 기성세대들이 춤추는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는 걱정 과 고정관념은 밝고 건강한 이 아이들에게 만큼은 해당이 없을 것 같다.
“어른들도 옛날에는 깡통차고 물고기 잡고 놀았잖아요. 춤추는 것도 똑같이 생각해주면 안될까요. 힙합은 저희 세대에서 통용되는 놀이문화일 뿐이에요. 공부하는 스트레스도 많지만 무조건 춤주지 말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많다고요”
기성세대의 편견에 대해 성진이는 평소 하고싶었던 말이 많았나보다. 성진이 말이 끝난 후 여기저기서 두런두런 수긍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가지고 있는 끼와 재능을 한참 발휘하고 싶을 나이입니다. 욕구를 발산할 수 없는 열악한 청소년 놀이환경을 탓해야죠. 춤추는 아이들을 노는 애들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그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어른들의 편향된 시각입니다.”
이 교사에 따르면 고대중에는 축구, 사물놀이, 독서 등 순수하게 결성된 동아리가 5개 있다. 이들 동아리는 교사들이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획하고 준비한다. 지도교사 또한 학생들이 추대하게끔 되어있다. 스스로 주인이 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꾸려 가는 동아리. 힙합동아리도 그중에 하나다. 긴 시간의 대화를 끝내고 사진을 찍겠다며 한 사람씩 멋진 동작을 취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려워 보이는 동작들을 무리없이 해내는 아이들. 가뿐 숨을 몰아쉬지만 정작 신나게 즐기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화려한 조명에 서야만 주인공은 아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아이들은, 나이를 잊고 “꺅꺅”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멋졌다.
송희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