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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서울에 남아’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120건
기간
1993—2026

120건 · '서울에 남아' · 최근 기사부터2 / 6쪽

  1. 2021.02.01 · 문화·교육 · 박경미

    3.10학생만세운동 기념관 조성한다

    …민홀(접견실)에서 진행됐다. 면천감리교회 옆에 건립되는 기념관은 기존에 남아 있는 빈 건축물을 활용해 약 35평 규모의 단층으로 조성된다. 여기에는 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번 설계용역 중간보고회에서는 김홍장 당진시장과 김영구 당진시 문화복지국장…

  2. 2021.01.11 · 문화·교육 · 한수미

    [신설상가]석문면 장고항리 파도횟집 조민자 대표“파도 소리와 함께 회 한 점”

    …있었단다. 애향단 활동을 하며 잡초와 풀 메주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성구미포구도, 조 대표가 다녔던 가동초등학교도 사라졌다. 그는 “고향이 사라져 섭섭하다”며 “그래도 당진에 오니 좋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서울에서 25년 동…

  3. 2020.06.16 · 지역사회 · 김예나

    [맛집] 읍내동 코바코 당진점 조성용‧이순희 대표코바코,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요!

    …정이 쌓였다”며 “수청동 인근으로 이전을 고민했지만, 정이 든 원도심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어 “원도심이 활력을 찾는데 코바코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국 코바코 중 매출 1위 달성키도 코바코를 운영하고 있는 부부 조성용‧…

  4. 2020.05.29 · 지역사회 · 임아연

    [책소개] 정미면 천의리 권하영 씨나의 ‘이타카’를 찾아 떠난 여행

    …정에서 열정과 설렘이 계속되도록, 여행을 상상하게 만든 책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인생 최고의 꽃같았던 날 1년 간 호주에서의 생활, 그리고 3개월 간의 여행을 모두 마친 뒤 돌아온 그는 ‘결국엔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 헛헛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5. 2020.02.03 · 지역사회 · 임아연

    [세상 사는 이야기] 고향 노래로 음반 낸 김용균 씨(석문면 교로리)애틋한 내 고향 석문‘장고항 부르스’

    …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모자 한가득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저금통을 깨서 10살 많은 동네 형이 치던 낡은 기타를 사 왔는데, 아버지가 혼을 내기는커녕 전화선으로 기타줄을 만들어 주셨다. “그땐 전화선을 ‘삐…

  6. 2019.11.16 · 문화·교육 · 김예나

    [창간 26주년 특집기획] 당진청년을 만나다 3박송이 당진시건강가족지원센터 건강가정지원팀장

    … 있는 서울대 출신 엄마, 연극영화과 출신 엄마를 만나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공대 출신 엄마는 수학문제를 풀며 마음을 다스리고, 연기를 전공한 엄마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전공을 살린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여성들도 충분히 자신…

  7. 2019.11.04 · 문화·교육 · 박경미

    [세상사는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전경수 이장“좌절하지 않았기에 오늘이 있다”

    … 봉사하고, 리더로 또래 학생들을 이끌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가전제품 모형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일했고, 이따금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도왔다. 30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부터 점점 두가지 일을 병행하기 어려워져,…

  8. 2019.09.06 · 문화·교육 · 한수미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 강천 해나루시민학교 교감“학생들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해주세요”

    …은 무려 60년도 더 된 1966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나도 이 사진이 남아 있는 줄 몰랐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는 언니의 소개로 적십자지사에서 일하게 됐다. 이 사진은 육군군인병원에서 일하던 중 봉천동으로 파견 나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9. 2019.04.05 · 문화·교육 · 당진시대

    [기고]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 빨리 드러나지 않는다. 사업을 접한 학생이나 주민은 그 가슴과 머리에 남아 효과가 여러 방향으로 서서히 나오는 것이다. 당장은 사업 효과가 적을지라도 우리는 문화 예술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계속 해야 한다. 나는 세계 각 나라에 작품 전시를 위해 자…

    당진시대
  10. 2019.01.07 · 문화·교육 · 박경미

    [신년기획] 가업을 잇는 사람들삼대한의원 한기선 원장아버지부터 대 이은 삼대(三代) 한의사

    … 그는 12살 때까지 당진에서 컸다. 이후 초등학교 5학년 때 상경해,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어릴 적 한 원장은 한의사를 꿈꾸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에 뜻이 없어 성동기계공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부와 선친의 피가 흘렀…

  11. 2018.09.11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장호순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굴러온 돌’과 ‘박힌 돌’

    …련된 속담은 세상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에 관한 속담으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거나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한다’는 것과 같은 표현들이다. 인구집중으로 인한 환경공해, 교통혼잡, 높은 물가 등으로…

    당진시대
  12. 2018.05.11 · 지역사회 · 임아연

    37년 만에 찾은 남매…“내 아들아! 내 딸아!”

    …영훈(47)이 10살, 영순(44)이 7살 되던 해, 부부는 딱 1년만 서울에서 돈을 벌어 오겠다며 아산 시부모 댁에 아이들을 맡기고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떠났다. 그 사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셨다. 남매는 한 마을에 살던 삼촌이 키우…

  13. 2018.01.24 · 문화·교육 · 한수미

    지긋지긋한 가난…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립다[사랑을 나눠주세요] 송악읍 가학리 박광석 씨

    귤과 두유, 그리고 온기가 남아 있는 전기장판 위를 손님에게 내주었다. 귤과 두유는 주식이라 했다. 주식을 주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이젠 물리기도 하고 덜 먹으면 된다며 웃었다. 분명 집 안인데 입김이 나왔다. 외풍으로 인한 추위로 손이 금새 뻣뻣해…

  14. 2018.01.15 · 문화·교육 · 나경욱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은석도예 문영호 도예가한 평생 걸어온 도예인생

    … 아마 이웃 누나가 찍어준 사진으로 기억한다. 그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남아있었다. 이곳은 아랫집 초가집 화장실 근처다. 내가 입고 있는 바지는 누비바지라고 해서 솜을 바지 안에 넣어 만들었는데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두 번째 사진은 30대 초반 …

  15. 2017.12.22 · 문화·교육 · 한수미

    [사랑을 나눠주세요]신평면 신당리 故 김병주 씨와 가족들의 사연너무나 큰 할아버지의 빈자리

    …데 생각보다 빠른 이별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할아버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면사무소를 가도, 농협에 가도 진희 양을 보고 사람들은 “김 씨네 손녀 왔네”라며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귀감이 됐던 할아버지 진희의 아빠 김영한 씨와 엄마 김미정…

  16. 2017.09.18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이재진 세한대학교 초빙교수당진유감(有感)

    …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답변들이었다. 그저 여느 지방 시골마을처럼 서울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정보와 인력이 부족하며 천천히 도시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 그것이 필자가 처음 접하게 된 당진의 간접 경험이었다. 현실에서 마주한 당진은…

  17. 2017.07.28 · 지역사회 · 김예나

    홍종옥 보라세탁소전라도 출신의 자상한 남편

    …번째 사진은 30대 때 찍은 사진이다. 다들 젊었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맏딸이 나를 많이 닮았는데, 딸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이 보이곤 한다. 두 번째 사진은 1988년 친정 부모님 환갑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난 6남매 중 맏딸이었고…

  18. 2016.10.28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당진시대시론]장호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주(移住)의 시대에서 정착(定着)의 시대로

    …으로 돌아가고픈 귀소본능에 전원주택을 갖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고향에 남아있던 부모들이 사망하면서 고향은 타향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도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전원생활은 그저 꿈으로만 남는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 도시로 이주해…

    당진시대
  19. 2016.10.16 · 문화·교육 · 한수미

    제1회 채운할머니 선정된 김춘기 씨(정미면 천의리)마음도, 얼굴도 고운 채운할머니!

    …밥조차 먹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같이 죽을 쑤고 무나물을 볶았다. 서울에서만 병원을 세 차례 옮겼고 차도가 보이지 않자 집으로 남편을 데리고 내려왔다. 남편이 쓰러지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년 6개월 동안 남편의 손발이 됐다. 혹여 냄새라도 날…

  20. 2016.10.02 · 문화·교육 · 김예나

    출향인을 만나다7 이희자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회장(면천면 율사리 출신)여성, 정치를 말하라

    …천국민학교(현 면천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했던 그는 “서울에 살면서도 여름방학이 되면 동생들과 함께 장항선 열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에 가곤 했다”며 “지금도 열차를 탈 때마다 장항선 열차를 떠올리게 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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