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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바다 잃은’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4건
연도
1999년

4건 · '바다 잃은' · 1999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 1999.11.29 · 환경·안전 · 당진시대

    바다 잃은 사람들, 그들은 지금···

    …지난 98년 7월15일 전남 목포시와 함평군 등 1개시, 4개군, 주변 바다를 메워 1억3천만평의 땅을 조성하기로 했던 영산강 4단계 간척사업을 백지화 하기로 했다. 60~70년대 국토확장과 농지확보를 목적으로 시작돼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대단위 간…

    당진시대
  2. 1999.11.2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석문면 초락도리 가익순씨 “육십평생 갯고랑만 파며 살았는데...”

    …으로 바뀌면서 가씨의 삶도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농사채도 없이 전적으로 바다에만 의존해 살아왔던 그는 바다가 막히면서 그 댓가로 어민들에게 주어지기로 했던 간척농지를 단 한평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작은 아들인 그는 초락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서 …

    당진시대
  3. 1999.07.26 · 산업·경제 · 이명자

    바지락 어장놓고 한진, 신평어민 분쟁

    …는 등 마찰이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분쟁의 대상은 송악면 한진 앞바다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지락 어장 2만여평. 일명 포대뻘로 불리는 이곳은 한진어촌계가 면허를 받아 공동운영하던 곳이었으나 지난 92년 아산항 개발구역으로 고시된 후 어업보상이 …

    당진시대
  4. 1999.07.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전우들 하나 둘 세상 떠나고...” - 석문면 초락도리 최병돈·가재문·박복환 어르신

    …초락도리 최병돈·가재문·박복환 어르신 석문면 초락도. 대호방조제 공사로 바다가 막히기 전 이곳은 물이 들고 남에 따라 육지도 됐다가 섬도 됐던 오지중에 오지였다. 1951년 6월,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 최병돈·가재문씨는 이 마을에서 굴 캐고 조개잡아…

    당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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