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6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면 석문지역의 어선들
… 정기선이 운항되는 정도다. 석문에서 한때나마 고기잡이배들이 드나들었던 포구로는 보덕포, 장고항, 용무치, 왜목, 교로리 일대와 초락도, 도비도, 대난지도, 소난지도, 대조도 등이 있다. 시대별로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이전에는 선박의 접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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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건 · '우현선의 포구' · 환경·안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24.02.16 · 환경·안전 · 당진시대
… 정기선이 운항되는 정도다. 석문에서 한때나마 고기잡이배들이 드나들었던 포구로는 보덕포, 장고항, 용무치, 왜목, 교로리 일대와 초락도, 도비도, 대난지도, 소난지도, 대조도 등이 있다. 시대별로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이전에는 선박의 접안이 …
2024.01.26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용해 어획하는 건강망도 곳곳에서 이뤄졌었다. 대호방조제의 건설로 사라진 포구로는 초락도의 포구들과 교로리의 돈섬이 대표적이다. 우현선 작가
2022.12.09 · 환경·안전 · 임아연
안식교 사업장이 개발된 이후에도 얼마간은 갯물이 들어와 대두런포구에 배를 정박할 수 있었다. 포구가 완전히 소실된 것은 삽교천방조제의 건설이 시작되면서부터다. 1939년생인 김재운 씨의 기억으로는 1940년대까지만 해도 대두런포구에는 어선이 20여 척…
2022.08.29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을 싣고 부릴 만한 부두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 우강면 일대의 포구에서는 배 갑판에 기다란 나무판을 걸쳐 배에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수문통을 오갔던 인천행 여객선이나 화물선의 입출항은 모두 물때에 맞춰 이뤄졌다. 만조 시에 수문통에 들어온…
2022.01.16 · 환경·안전 · 당진시대
“할아버지가 하시던 대로 곤쟁이 그물로 곤쟁이를 잡으러 가고 그랬어요. 모기장처럼 굉장히 가는 망이 있어요, 그거는 언제 잡느냐면 물 들어올 때, 물이 셀 때 쳐 놓으면 곤쟁이가 들어가요. 그러면 그놈을 잡아서 지금 곤쟁이젓을 담가 팔았어요. 삭혀서 …
2021.05.11 · 환경·안전 · 당진시대
…마을인 댓바지에 외나무다리식당이 위치해 있다. 선머리와 댓바지가 옛 서원포구의 자리로 주민들 기억에 의하면 이곳으로 1960년대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바닷물이 가학리 다리 밑까지 올라갔었는데 골이 좁아서 배는 여기 서원포까지만 들어왔어. 이 근처가 …
2021.01.21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성구미포구에 자리한 당산은 예부터 당집이 있는 산으로 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다. 구술자들의 기억에 의하면 1970년대까지 당산에서 풍어제를 지냈다. 마을에서는 회의를 통해 부정 없는 사람을 당주로 정했다. 당주를 맡은 사람은 섣달 그믐날 목욕재계…
2020.09.28 · 환경·안전 · 당진시대
…다. 굴이며 바지락, 낙지가 섬사람들의 주된 소득원이었다. 신평면 일대 포구에 살던 어민들도 행담도 앞에서 조업을 했고, 바지락이며 굴을 땄다. 1970년대까지 행담도에는 어선을 가진 주민들이 없었다. 당시 행담분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위해 교육청에서 …
2020.05.25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여전히 인근 어민들이 백합을 채취하고 있다. 상대펄은 신평면 매산리 깔판포구와 맷돌포 사이 앞바다에 위치하는 펄이다. “저기 삽교천을 막기 전 민물 있는디 거기가 대합 잡는 데여. 그 아래로는 바지락 잡는 데고. 대합은 대칼이라고 지게 마냥 생겼어. …
2020.05.18 · 환경·안전 · 당진시대
…거나, 간척돼 논으로 이용돼왔다. 운정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옛 시절, 포구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을 언급할 때 반드시 ‘백합’을 언급했다. “한진 위에서부터 이 위까지 지금 여기 막힌디, 여기 안이두 뻘이 모래뻘이 겁나게 지다랗게 크다구. 일명 지뻘이…
2020.05.04 · 환경·안전 · 당진시대
… 공포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통해 옛 포구에 대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옛날 우리 살던 집이 포구하고 멀어야 300m쯤 떨어졌을까. 바로 바닷가 모래사장 앞이었어. 그때 선창도 없어서 돌을 징검징검 짚고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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