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미포구에 자리한 당산은 예부터 당집이 있는 산으로 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다. 구술자들의 기억에 의하면 1970년대까지 당산에서 풍어제를 지냈다. 마을에서는 회의를 통해 부정 없는 사람을 당주로 정했다. 당주를 맡은 사람은 섣달 그믐날 목욕재계 하고 마을의 큰 샘물을 모두 퍼내 샘 청소를 한 뒤 새 물을 받는 일로 당제 준비를 시작했단다.
“당주를 맡은 분은 섣달 그믐날 목욕재계 하고 큰 샘물을 퍼갖고 샘 청소를 싹 해. 그래서 새 물로다가 떡도 하고 밥도 해서 밤 12시에 고사를 지내요. 그럼 우덜은 어린 마음에 산이 깊어가지고 겁나서 올라가지도 못했어. 그때는 또 거기가 엄했어. 오줌·똥을 싸면 보리쌀 한 말, 나무 한 가지를 꺾으면 쌀이 한 말. 그렇게 엄했슈. 당주한테 고발하거나 걸리믄, 그때는 내라면 다 냈거든. 마을규칙이 그랬어. 그리고 풍어제 때는 바다에 나가서 사고 나지 말고 안전하게 조업해 달라고 용왕님께 비는 거지.”
우동기 씨는 성구미 풍어제의 마지막에 대한 기억도 꺼내 놓았다.
“우리집 작은 통통배, 그 배 있을 때까지 (풍어제를) 했어. 왜 당제가 없어지기 시작을 했느냐 하면, 당주만 맡으면 사람이 죽어. 한 3년에서 5년 안에. 당주만 했다하믄 사람이 죽는 거여. 그렁께 사람들이 그걸 인제 안 할라하지. 지나고 나니께 그걸 알었지. 하는 과정에서는 잘 몰랐어, 근디 이OO이 아버지라고 수염이 이렇게 나고 점잖은 분인디, 4~5년 안에 연세도 있고 그러니까 자연사로 돌아가셨는지 어쩐지 몰라도 돌아가시고, 또 내가 아는 이OO이 아버지 이 양반이 또 당주를 맡은 뒤 멀쩡한 사람이 돌아가셨어. 병도 안 든 사람이 그렇게 돌아가셨구. 그다음에 또 김OO 씨 부친이라는 사람이 당주를 맡아갖고 한 2년쯤 했나, 아들하고 배를 나갔는데 닻을 주다가 아들이 닻줄에 걸렸어. 물 속에 아들이 곤두백힌 거야. 근데 용케 허우적 허우적 하다가 다리가 끌러져서 올라온 거여, 살았어. 그래서 배만 갖구 아들만 싣구 육지로 온 거여. 뭐 경황이 있것슈. 떨려갖구. 아들이 물 속에서 죽었다 살았는디. 그렇게 와 갖고 동네 마침 잔치집이 하나 있었는디 거기서 인제 옛날에 막걸리 해장들 많이 하잖아요? 막걸리 한 잔 딱 마시고 팍 쓰러진 거여. 죽은 거여. 당주를 하면 그렇게 죽었어. 그렇게 이 분이 죽고 나서부터는 당주를 할 사람이 없었어.”
당주가 없는 당산에 점차 사람들의 출입이 줄어들면서 당집이 허물어지고 풍어제도 자취를 감추었다.
우현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