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맷돌포구에서 뱃고사가 이뤄졌다. 1950년대 이후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치르는 풍어제나 당제 같은 어업활동과 관련한 대규모 민속행사는 없었으나 정월대보름 풍물놀이는 행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내가 5톤짜리 배를 지어다가 뱃고사를 지냈는데, 그 시절에 군수영감까지 다 왔었어. 그땐 돼지머리 아니고 꼭 소머리를 사다 놓고 뱃고사를 지냈지.” (윤주홍)

“여기도 정월달에 배에다 깃발 달아놓고, 떡 해다놓고 했지. 각자 집마다 돌면서 징과 꽹과리 치고 먹고 놀고 했었지. 이 동네가 뱀 형국이라고 해서 고사를 지낼 때는 돼지고기를 쓰지 않고 소고기를 썼어. 뱀하고 돼지하고 상극이기 때문에 절대 쓰지 않는 거여.” (박상진)

“떡도 시루떡에 팥을 넣지 않고 콩으로 만들고, 우리 딸 낳던 해에는 다들 고사떡 한다고 쌀 담가놨는데 한 집도 고사를 못 지냈어. 내가 애기 낳느라고. 왜냐면 부정 탄다 그랬거든, 피 봤잖아. 그럼 고사 안 지내. 초상집에 갔다 와도 안 되고, 손가락 하나 베여도 안 되지. 그리고 또 그전에는 배를 지어 오면 오색깃발을 선물로 줬어. 지금 개업할 때 화환 주는 것하고 똑같어. 오색깃발 해서 하얀 상자에 한문으로 상(祥) 자를 박아 갖고. 그럼 이제 일곱발 되는 깃발을 대나무에 걸어서 배에다 달았잖아. 만선하라는 뜻으로.” (차준희)

그렇게 선물로 받은 오색깃발은 포구로 돌아올 때 배에 묶어 먼저 육지나 상인 선박에 만선 소식을 알리는 신호기로도 사용됐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져서 부부조업이 흔한 일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어선은 남자만 승선할 수 있었다. 아이를 낳거나 생리를 해도 부정 탄다고 여겨 뱃고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선체를 처음 물에 띄우는 진수식이나 뱃고사를 지낼 때면 선주나 선원, 일가친지 외에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구경꾼으로 함께 했다. 고사 음식을 여럿이 나눠 먹어야 만선을 이룬다고 믿었다.

부수리 주민 안복식 씨는 “배에서 고사를 지내는데, 메밀범벅을 만들어 바다에 던져가면서 고기 많이 잡게 해달라고 뱃고사를 지내는 걸 봤다”며 “예전에는 개인 몇몇이 석화산에서 서낭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