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0 · 정책·행정 · 박경미 기자
[칼럼] “핵전쟁 없는 나라, 평화와 번영으로”
…다녀와서 - 7월 6일 당진시와 예산군 평화대사협의회 회원 40여 명이 일본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일본 후쿠가와까지 훼리호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아침 7시에 일본에 도착했다. 회원들은 가라쓰(당진현)→대마도→부산을 잇는 한일 해저터널 굴착 현장을 답사…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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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건 · '일본 애국가' · 정책·행정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24.07.20 · 정책·행정 · 박경미 기자
…다녀와서 - 7월 6일 당진시와 예산군 평화대사협의회 회원 40여 명이 일본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일본 후쿠가와까지 훼리호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아침 7시에 일본에 도착했다. 회원들은 가라쓰(당진현)→대마도→부산을 잇는 한일 해저터널 굴착 현장을 답사…
2019.03.15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산리에서 운명하였다. 남주원 의사가 재산을 처분하고 대호지를 떠난 것은 일본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억압 때문일 것이다. 해방 후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만세운동의 선봉에 선 송재만 의사 셋째로 살펴볼 분은 송재만(1891~1951…
2009.09.21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만강 국제협력 포럼에 참가했다. 이번 포럼은 대한민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4개국 6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해 경제개발과 투자협력에 대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4개국 지역대표들이 다자간 교류협력 회의를 통해 자원개발, 경제협력, 농업, 문화관광 분…
1997.03.31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는 6백여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태극기가 게양되고 독립선언문 낭독, 애국가 제창이 이어진 뒤 만세시위에 들어가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향하면서 시위군중은 1천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때 시위를 제지하기 위해 왜경이 출동해 시위대와 충돌하면서 평화적이던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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