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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지금 너무’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18건
연도
2018년

18건 · '지금 너무' · 문화·교육 · 2018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 2018.12.24 · 문화·교육 · 임아연

    ■당진 원도심 문화공간 읽기 포럼“삶의 중심이었던 원도심 지역민의 문화와 정체성 담겨”

    당진시문화재단(이사장 이명남)이 지난 14일 <그때 그 곳, 그리고 지금 여기 - 당진 원도심 이야기>라는 책자를 발행하고, 지난 19일 ‘당진 원도심 문화공간 읽기’를 주제로 한 포럼을 개최했다. <당진 원도심 이야기>는 과거의 원도심을 기억하는 4…

  2. 2018.10.27 · 문화·교육 · 한수미

    [세상사는 이야기] “이 또한 지나가리라”신평면 남산리 손영자 씨

    …천에 빠져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단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했던가.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특별한 것도,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야 비로소 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단다. 생·사의 갈림길 신평면 남산리에서 살고 있는 손영자 씨…

  3. 2018.10.15 · 문화·교육 · 박경미

    [문화에서 답을 찾다 26] 한국시낭송가협회 당진지회낭송으로 전하는 시의 아름다움

    … 어렵게 느끼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는 “시를 외운다는 생각에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우선 소리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시를 소리내 읽으면 시가 살아 움직이며 감동을 준다”며 “시낭송은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마음에 담고 시에 …

  4. 2018.10.08 · 문화·교육 · 임아연

    [세상사는 이야기]당진버스터미널 내 ‘카페 톤’ 운영하는 허지원 씨“숨 넘어 가게 힘들어도 다 지나가요. 인생도 마라톤도”

    …지 실패했다. 자녀들의 학비를 제 때에 낸 적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엔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한꺼번에 겹쳐오는 시련들에 힘겨워하던 그는 지긋지긋한 불운으로부터 도망치듯 지난 2006년 언니가 살고 있던 당진에 왔다. 처음엔 1…

  5. 2018.09.11 · 문화·교육 · 임아연

    [세상 사는 이야기] 은퇴 후 귀촌한 최종소·김경희 부부(순성면 성북리)노년에 찾은 축복의 터전

    … 창 너머로 보이는 모든 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전국 곳곳을 다녔지만 지금, 여기 당진이 가장 좋단다. “성북리가 가장 좋더라”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최종소·김경희 씨 부부는 지난 2014년 10월 당진에 터를 잡았다. 연고도 없고, 전혀 생각치도 …

  6. 2018.08.20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문영미 문화예술창작소 내숭 대표그림자 인형극을 함께하며

    …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농번기 출석률에 있었다. 농촌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나 또한 어르신들의 출석률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어르신들의 출석률은 굉장히 높았다. 처음엔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우리 부모님 때문…

    당진시대
  7. 2018.08.17 · 문화·교육 · 김예나

    [추억사진] “개구쟁이 꼬마가 결혼을 하다니…”

    … 머리에 주사바늘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고 구석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눈이 시릴 정도다. 그 이후 진호는 다행히도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컸다. 두 번째 사진은 진호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 찍은 사진이다. 탑동초 병설유치원에 다녔던 진호는…

  8. 2018.06.22 · 문화·교육 · 한수미

    ■탈북민과 함께하는 통일 토크콘서트소통하며 허무는 분단의 벽

    …다. 이제는 집으로 친구들도 초대하곤 한다. 난 그 친구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감사하다. 우리 아이를 차별하지 않고 안아줬기 때문이다. 주변에 우리 아들과 같은 친구가 있다면 따뜻하게 보듬어 주길 바란다. 정민우 “탈북자 아…

  9. 2018.06.10 · 문화·교육 · 한수미

    “앞으로 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김민주(가명) 씨의 눈물

    …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한국을 찾게 됐다. 하지만 그때의 선택은 지금 후회로 되돌아오고 있다. 23살에 찾은 당진 민주 씨는 23살에 당진을 찾았다. 어린 나이였다. 결혼과 함께 시골 마을의 남편 집으로 들어갔다. 시아버지 한 명과 시어머니 둘…

  10. 2018.06.09 · 문화·교육 · 김예나

    송악읍 기지시리 정행화 씨20대, 꽃처럼 예뻤던 시절

    …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입선하고 충남서예대전에서 특선하는 영광을 안았다. 너무 기뻤고 서예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서예를 처음 접했다. 당시 선생님의 칭찬이 나이를 먹고서도 다시 붓을 잡게 했다. 남편의 고향인 당진에 …

  11. 2018.05.11 · 문화·교육 · 당진시대

    [기고] 은사와 함께한 동창회를 마치고

    …로 포장도 안 되고 자갈길을 버스로 통학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모은 것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고향이 그립고 옛 친구가 보고 싶은 건 학창시절에 함께 많은 추억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추억을 떠올리며 한 두 명씩 모이다가 어느…

    당진시대
  12. 2018.05.08 · 문화·교육 · 김예나

    “선생님, 그 때가 그립습니다”

    …공부도 못하던 코흘리개가 은사님들의 가르침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민찬기 홍보부장: 개인정보 등으로 인해 은사님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충남도, 당진교육청을 두 번씩 오가는 등 은사님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여곡절 끝에 은…

    당진시대
  13. 2018.05.08 · 문화·교육 · 임아연

    ■면천 두견주, 남북 정상회담 그 뒷이야기 ‘효심의 술’에서 이제는 ‘평화의 술’로!

    …한 80일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수요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어 지금은 예약만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두견주 맛이 궁금하다면 면천두견주 전수교육관(성상리 322-5)에서 시음은 가능하다. 한편 김현길 회장이 두견주가 남북 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

  14. 2018.04.27 · 문화·교육 · 김예나

    연극 통해 ‘회춘’하기!

    …리다 커서야 이름이 생겼단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때를 보낸 한 할머니는 지금 불리고 있는 이름보다, 일본어 이름으로 먼저 불렸기도 했다. ‘회춘유랑당’을 통해 할머니들이 잊고 있던 자신의 옛 이야기들을 막힘없이 술술 꺼내놓았다. 정미면 산성리 노인을 …

  15. 2018.04.13 · 문화·교육 · 한수미

    도전골든벨 방영된 호서고등학교 쌍둥이 형제, 최후 4인에 남아

    …재빈 학생은 “1등을 할 줄 알았는데 떨어졌다”며 “4등은 상금도 없어 너무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 후로 정현지 학생이, 그리고 최준식 학생이 43번에서 떨어지며 44번부터 승빈 학생이 혼자 남았다. 승빈 학생은 “긴장이 될 법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

  16. 2018.04.06 · 문화·교육 · 박경미

    합덕초 야구부, 29년만에 일 냈다!

    …부 두 가지 모두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는데 선수 모두가 열심히 따라줘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돼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소감 한마디 배무룡 교장 : 이번 대회의 준우승을 통해서 합덕초의 야구 실력이 향상됐다는 것을 알…

  17. 2018.03.09 · 문화·교육 · 김예나

    당진여객운수(주) 이강길 버스기사‘노란 리본’을 기억하는 버스

    …스트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 그 장면을 다시 본다는 게 그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는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고 울컥한다. 운전하다가도 문득 세월호 생각이 나면 마음 한편이 아프단다. 게다가 왜 배가 가라앉았는지, 진실…

  18. 2018.01.24 · 문화·교육 · 한수미

    지긋지긋한 가난…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립다[사랑을 나눠주세요] 송악읍 가학리 박광석 씨

    … 실패하기만 했다. 그러다 한 때는 1년 간 술에 빠져 살았다. 그는 “너무 힘이 들어 술을 마시고 자고, 또 일어나 술을 마시고 그렇게 살다가 호되게 아팠다”며 “그 이후 6개월 간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때처럼 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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